글과책
언젠가 꿈을 꾸는 고양이
언젠가 꿈을 꾸는 고양이
2023.11.14어느 여름날 울산의 한 바닷가에서 그 고양이는 태어났다. 평범한 코리안 숏헤어 종의 핑크 발바닥을 가진 치즈태비. 울산의 바닷가는 습하고 또 시끄러웠다. 어미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그저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배가 고파 보이는게 없었던 고양이의 발걸음은 시끄러운 차도를 건너 어느 해수욕장까지 닿았다. 제대로 씻지 못지도 못해 검은 코딱지와 딱딱한 눈꼽이 낀 고양이는 그 곳에서 잠이 들었다. 고양이가 눈을 뜬 그 곳은 어느 박스 안이었다. 습하지 않았고, 백색 소음같은 TV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시끄러운 여자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고양이는 이 여자 아이에게 냥줍을 당한 것 같았다. 여자 아이의 쓰다듬을 받으며 아기 고양이는 다시 잠에 들었다. 여자 아이의 손은 조금 축축했지만 아주 조심스..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
2023.11.13자기만의 기준을 높게 잡고 주변 사람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1년차 때 부센터장님이 해준 말이었다. 그 이후 따로 인연은 없없지만, 내 마음 속에 계속 새겨두는 말이 되었다.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면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평온함을 유지하고, 남들이 잘했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에 더 잘하도록 다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5년차가 된 지금,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나를 알아주지 않을 까봐하는 마음은 아직 달랠 수가 없는 것 같다. 팀에서 나는 작은 소식 하나에도 크게 반응한다. 예를 들면 보너스 액수 같은거. 기대했다가도 금방 실망한다. 동료들은 나를 놀리면서 '일희일비의 표본'..
확실한 삶을 사는 방법
확실한 삶을 사는 방법
2023.11.13드뷔시를 듣는다. 고상하고 싶어 듣는 건 아니고 최근 들어 서사가 있는 음악에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클래식을 듣지 않는 날이면 공간이 조용해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적막은 무언가가 제 자리에 정돈된 느낌을, 차분한 느낌을 준다. 같은 이유로 밤에는 창문을 열어 조용히 차만 지나가는 도로를 본다. 바깥을 내다보는 내내 바람이 살랑거린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 차이를 맞으며 뒤에서 앞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사는 건 참 규칙적이고 자연적이구나' 생각이 든다. 예전엔 쿵짝거리는 힙합이나 인디를 들었는데. 요즘엔 왜 이런 것들이 당기는지. 조심스럽게 '나이가 든 건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다지 마음에 드는 답이 아니다. 생물학적 노화로 없던 게 갑자기 생기는 건 주름만으로도 ..
귀여운 삶의 의미
귀여운 삶의 의미
2023.11.13인스타그램 꿀김(ggul_gim)님 작업물 인간의 본성, 날것의 감정을 전달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선도 투박하고 어린애가 그린 것 같은 어설픈 그림체. 그렇지만 어린애같지 않은 문장과 내용들. 그 속 문장에는 내 편이 되어주는 다정한 이야기가, 나를 지탱해줄 묵묵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나의 귀여운 친구 젤리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 그림들을 찾아 종종 본인의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곤 한다. 어느 날 바뀐 젤리의 프로필을 무심코 확인하다가 나는 불시에 따뜻함을 선물 받는다. 날 것의 감정들이 옛날보다 많이 퍼져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혐오하고 편 가르는 날 것의 감정이 있는가 하면, 응원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줄 감정들도 빛을 내고 있다. 물론 이 감정들은 혐오보단 힘이 약해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태도의 말들 독서 에세이
태도의 말들 독서 에세이
2023.11.13태도의 말들: 사소한 것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 책을 읽고 사람을 읽고 태도를 읽어요 책을 좋아하지만 사람이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 말수가 적은 사람을 주시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 낯선 이에게도 선뜻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문화 웹진 『채널예스』와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만드는 엄지혜 기자입니다. 책보다 사람이 더 좋다고 말하는 엄지혜 기자의 주력 분야는 인터뷰. 아마 한국에서 유명 인사를 가장 많이 만나 본 사람 중 한 명일 겁니다. 엄 기자가 만난 유명 인사들에게는 유명하다는 점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책’이지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을 쓴 사람 그리고 책을 만드는 사람도 저자는 놓치지 않습니다. 책에서 출발한 애정으로 책에 담긴 사람의 마음과 책 뒤에..
좋은 패스는 달리는 사람에게 날아간다 독서 에세이
좋은 패스는 달리는 사람에게 날아간다 독서 에세이
2023.11.13좋은 패스는 달리는 사람에게 날아간다 7년 차 카피라이터가 전쟁 같은 회사에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좋은 패스는 달리는 사람에게 날아간다』는 해낼 수 있는 ‘패스’는 회사라는 ‘필드’에 남아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해준다. 꿀 바른 말 없이,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 공감을 불러일으킨 뒤, 기어이 좋아하는 일을 지킬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저자 오하 출판 웨일북(whalebooks) 출판일 2020.02.11 오하 작가 에 대한 독서 기록입니다. -2022. 03. 21 갈리고 털리고 쪼이며 만들어지는 광고인들의 자조를 느낄 수 있는 경쾌한 책이다. TBWA는 특히 박웅현, 유병욱, 김민철 작가가 일하던 곳이었는데, 이 책까지 포함해서 벌써 4번째이다. 책을 소개하기 전에 나는 이 책이 삽화 중심의 책인 ..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독서 에세이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독서 에세이
2023.11.13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우리 모두 정상이 아닌 부분이 있음을 깊이 공감하게 하면서, 한편으로 그 절망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지들을 위트 있게 들려줘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젊은 ADHD의 슬픔》의 정지음 작가. 이번 두 번째 책에서는 우리 사이의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은, 그래서 미칠 듯한 감정들을 들여다보면서 작가 특유의 솔직하고 유쾌한 감성을 풀어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내가 사랑한 실망들’은 무엇이 있었는지 들여다보게 되고, 작가가 들려주는 ‘세계와 세계가 부딪치는 소리’들을 들으며 자신 또한 같은 소리를 경험했음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먼 나랑 이웃 너랑’ 사이에 느낀 소소한 기쁨의 순간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 정지음 출판 빅피시 출판일 2022..
맑음에 대하여 독서 에세이
맑음에 대하여 독서 에세이
2023.11.13About 'Clear'(맑음에 대하여) 이 작은 책은 스스로의 서투름과 엇갈림, 흔들림을 긍정하기 위해 쓰인 글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마음이 잠시 어두워지는 순간에도 본연의 생기를 지키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 시어에 마음이 포개지는 고요한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구석에 놓여있던 마음들이 조명을 받고 맑은 얼굴을 보여준다. 서툴고 낯선 시간을 충실히 통과할 때에만 고유의 아름다움과 풍요를 기억해낼 수 있다. 우리가 서로의 음양을 모두 드러낼 때 존재로서 온전하다는 믿음이 독자와 저자가 공유하는 소중한 감각이다. 저자 강준서 출판 스튜디오구(Studio Gu) 출판일 2022.12.01 강준서 독서 기록 90페이지의 작고 얇은, 만 원채 되지 않는 독립 출판물 '맑음의 대하여'는 내가 ..
애주가의 대모험 독서 에세이
애주가의 대모험 독서 에세이
2023.11.13애주가의 대모험 술을 통해 세상을 탐험해나가는 진정한 술꾼, 제프 시올레티가 1년 동안 직접 마신 술에 대한 생생한 음주 체험기이자 전 세계 술을 둘러싼 지적 탐구의 기록 『애주가의 대모험』. 저자가 직접 체험한 술에 대한 주관적이고 유쾌한 품평은 물론, 새로운 술들이 탄생하는 역사적 현장의 목소리, 나아가 흔한 맥주나 와인을 언급하는 수준을 넘어서 국가별 문화별로 저마다의 특색을 가득 담은 주류의 세계를 선보인다. 세계적인 주류 브랜드의 CEO나 마케팅 담당자부터 동네 구석진 곳에 위치한 바의 바텐더, 크래프트 맥주를 양조하는 브루마스터, 증류소의 마스터 디스틸러까지 수많은 곳을 여행하며 술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과 만난 저자는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술 세계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술의 역사와 전..
평일도 인생이니까 독서 에세이
평일도 인생이니까 독서 에세이
2023.11.13평일도 인생이니까 그런 생각이 든 적 있을 것이다. 지금의 삶이 진짜 내 삶은 아닐 거라고, 그러니까 종착점은 다른 데 있고 지금은 이 삶을 임시로 거치고 있는 것뿐이라고. 마치 지금 몸무게가 내 최종 몸무게가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처럼.그러면서 우리는 수시로 소망한다. “빨리 여름휴가 오면 좋겠다!” “빨리 취업했으면 좋겠다!” “빨리 영어 좀 잘했으면 좋겠다!”(2020년 봄 현재 아마 전 국민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빨리 코로나가 사라지면 좋겠다!”) 『평일도 인생이니까』에서 작가 김신지는 말한다. “물론 삶에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도 있다. 기다리거나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수목원에 가기 위해 꽉 막힌 도로에서 금쪽같은..
빈틈의 온기 독서 에세이
빈틈의 온기 독서 에세이
2023.11.13빈틈의 온기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밤의 여행자들》, 《1인용 식탁》 등, 기발한 상상력과 감미로운 문장력으로 세상에 없던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 온 소설가 윤고은! 하루 세 시간의 출퇴근을 반복하는 찐노동자이자 여행 예찬자이기도 한 그녀가 일상의 빈틈 속에 숨어 있는 소소하지만, 그럼에도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찰나의 순간들을 기록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60여 편의 산문에는 삶이 주는 기쁨이 퍼프소매처럼 살랑거리듯 녹아 있다. 낡은 속옷은 어떻게 해야 우아하게 버릴 수 있을까(태우는 건 어떨까, 근데 가능하기는 할까), 난생 처음 보는 노부인에게 알몸의 등이 밀리고 있을 땐 어딜 응시하고 있어야 할까(바닥의 타일이 차라리 거울보다는 낫지 않을까), 치약 대신 의치부착재로..
소소한 즐거움 독서 에세이
소소한 즐거움 독서 에세이
2023.11.10소소한 즐거움 『소소한 즐거움』은 우리가 크고 화려한 행복만 좇느라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52가지 작은 기쁨의 원천을 소개한다. 알랭 드 보통과 그가 설립한 인생학교 팀은 1년이 52주이니까, 한 주에 하나씩 이 책을 통해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각 순간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소소한 즐거움이라 명명한 것은 결코 그 행복의 양이 적거나 보잘것없어서가 아니다. 따뜻한 물로 목욕하기, 무화과 맛보기, 갓 구운 빵 한 조각, 침대에 누워 이야기 나누기, 일요일 아침 등 우리 삶에 만족을 더해주는 평범한 것들이 그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외면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소소한 즐거움은 더 이상 소소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보다 큰 감동과 만족감을 줄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