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꽃은우님
어린 시절의 서울 생활, 지친 생활에서의 지혜를 건네주었던 친구그 때는 허덕여 알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이해했다. / 2014년 12월 9일 리포스팅
그분이 오셨다. 왕꽃은우님. 오랜만에 보는 약속이라 만나기 1시간 전부터 머리에 힘도 줘보고 옷도 여러벌 입어봤다. 약속시간, 설레며 역 1번 출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에 맞춰 은우가 도착했고, 우리는 할 얘기가 많다며 소란스럽게 움직였다.
또래 친구들보다 '반짝이는 것'에 대한 열망이 컸던 나, 당시에 같은 처지에서 말할 수 있는 '또래 친구'가 많이 없었다. 은우는 그 많지 않았던 친구중의 한 명이었고, 같이 나도원정대를 기획했던 파트너였다. 서로 할 일이 바빠 은우는 독일로, 나는 서울로- 갔다가 이번에야 제대로 만났다. 그래서 너무 만나고 싶었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고 싶었다.
물론 이 곳엔 날 챙겨주고 사랑해주고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보잘 것 없는 내 깊은 것을 꺼내어 말할만 한 사람이 없었다. 고민아닌 고민을 털어놓으면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잣대를 내려 이야기 해주었다.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그랬구나'하며 등토링을 해 줄 사람이 곁에 없어서 그런지 그런 조언도 좋게 보이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날, '왕꽃은우님'과의 약속은 정말 단비같았달까나. 어쩌면 그냥 흔한 향수병 일화일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내가 들었던 생각, 겪었던 일, 그리고 변화에 대해서 필터링없이, 그리고 장난기없이 뱉어냈다. 사실 어쩌면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내 존재를 피력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반증으로 그렇게 뱉어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관계가 나빠진 연예인들의 SNS처럼 <난 이렇게 산다고, 이런 핫이슈가 있었다고>. 그럼에도 왕꽃은우님은 있는 그대로 다 들어주고 같이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는 동안 '아 지금 너무 좋아'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자리를 옮겼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늘 카페에서 하던 게 있다며, 카페 티슈에 서로 편지를 적었다. 뭔가 간만의 아이스브레이킹이라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가벼운 2015년의 이야기를 했다. 내년엔 어떻게 지낼건지 뭘 준비하고있는지. 그리고 리스트를 적기도 하고.
마른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 은우가 시 하나를 소개시켜줬다. <산산조각>. 일상이 너무 퍽퍽하고 윤이나질 않아서, 앞이 예정되어 있지 않아 참을 수 없던 내가, 깨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손들고 뛰어대는 모습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시에서는이렇게 이야기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고, 산/산/조/각/대로 살/아/갈/수/있/다/고. 다만 아둥바둥 살았더니 기껏 산산조각나버릴 지 모른다는 것은 좀 슬프게 느껴졌다.
은우가 간 후에도 느끼는 외로움과 텅 빈 느낌들은 오히려 왕꽃은우가 떠난 뒤에 더 크게 느껴진다. 아마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거겠지. 다이어트 중에 감자칩을 먹는 것 같은. 애틋한 기억을 담아 은우를 기억하는 글을 남기고, 닥치는 대로 메세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고, 또 외롭다고 투정 부렸다. 잠을 자거나 맥주를 마시라며, 책보다 핸드폰을 더 많이보니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지금 가겠다며, 내 사람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오늘의 향수병은 이쯤에게 마감할 것 같다. 왕 꽃 은우님 글이 너무 다크다크하지만, 그래도 단비, 금비같던 시간이었다는 사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산산조각>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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