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3/18] 일기 쓰기 시작
브런치를 시작했다. 나름 정제된 글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자기 중심적인 글을 쓰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면 '나는~이렇다' 이라던지, 또는 '나는 ~ 이런 경험이 있다.' 라던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때는 휘갈겼다가 하고 싶은 메시지가 나올 때는 구조를 잡지 못해 쉽게 글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 글을 시작했는데 부족함과 모자람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읽고 쓰고, 또 고쳐야겠다는 마음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함께 공유하는 글도 좋은데 솔직한 글은 어떻게 쓰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하루를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전에, 내가 왜 일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기록해둔다. 기록하지 않으면 또 까먹을테니까.
어제부터 오늘까지 이벤트 보상을 지급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간단한 기능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아직 구현 되질 않아 기술자에게 맡겨야하는 상황. 다행히 기술자와 협의는 끝냈지만, 데이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었다. 게다가 재택 근무 중이라 큰 데이터는 아예 열어볼 수도 없었다. 마침 장인처럼 실제로 볼 수 없는 데이터를 묻고 들으면서 전달했다. 혹시나 무언가 잘못될까봐 밤 9시까지 메일과 메신저를 들락날락거렸는데 다행히 별 말이 없다. 제발 아무 일 없이 잘 넘어갔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아니 뭐 이런 기능도 없단 말이야? 했지만, 안챙긴 건 내 잘못이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전 동료들과 우리집 집들이가 있는 날이었다. 동글이와 아침부터 부단히 음식을 준비하려..고 했으나 망할놈의 보상 지급때문에 동글이가 다했다. 재택 점심 시간을 틈타 후다닥 씻고 집을 정리했다. (그 사이에 동글이 친구들이 보내준 와인셀러가 왔는데, 지금 너무 만족 중이다. 나는 인테리어의 신이야) 약속 시간이 되니 한 명은 정확하게 도착했고, 다른 한 명은 30분 늦는다고 했다. 늘 일하다가 늦는 사람이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스포하자면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결국 집들이에 참석을 못했다. 나중에 전화로 사정을 들었는데 종이 하나 구하러 5시간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어휴... 여튼 도착한 친구 맥키티는 우리집이 너무 예쁘다고 와이프한테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서 보냈다(보고했다). 예쁜 커트러리도 선물로 줬다. 커트러리는 다음에 디저트 먹을 때 쓸 예정이다. 사실 큰 얘기는 못하고 발송 협의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웠지만 집들이 자체는 너무 재밌었다. 와인 싸게 팔면 구해준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다.
내 카톡에는 Ent.연예뉴스 모임이 있다. 지인끼리 모인 단톡방인데 욕도 많고 투정도 많고 여하튼 남들에게 보여주기는 좀 그런 단톡방이라 교묘하게 플러스친구처럼 만들어 놓은 채팅방이다. 그 단톡방에는 비교적 조용하고 무던한 친구가 있다. 다같이 시발시발 거려도 덜 시발거리며, 말보다 눈빛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친구다. 오늘은 이 친구가 많이 힘든 날이었다. 얼마만큼 힘드냐고 물었더니 살면서 제일 힘든 것 같다고 했다. 욕도 많이 했다. 원래 저런 친구가 아니었는데, 어떤 상황이 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 어쩌지라는 말과 함께 놓아버리고 싶다는 친구 말에 'ㄱㄱㄱ'라고 보냈다. 나보고 정해달라고 한 말도 아니었고 어짜피 선택은 친구가 할테니 솔직한 내 마음을 보냈다. 근데 사실 내 팔자부터 걱정해야지. 난 좀 더 서둘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유토피아 서울팟 단톡방이 오늘 핫했다. 주식 이야기와 유투브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대국민 유투브 시대'에서 어떤 채널을 할 지, 너도 나도 좋아하는 채널들을 공유했다. 마림바 치는 여자도 있었고 릴카라는 여신 BJ도 있었고 밀라논나 할머니 채널도 있었다. 디자이너 인스타에서 봤던 할머니가 이 할머니 였구나. 겉모습도 너무 세련되었는데 따뜻한 말도 곧잘 해주시는 분이었다. '역시 사람에게 영향력이 있으려면 잘나가야 돼'. 가식적인 모습은 젊은 세대 타깃에게 바로 아웃이라는 글을 봤었는데 성공한 35만명 유투버 밀라논나 님은 꾸밈 없고 진심담긴 말들이 느껴졌다. 전문성에 대한 존경심, 성공한 삶을 산 사람에 대한 신뢰감, 그림자 같은 면을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인간미, 삶에 대한 자신감과 올곧은 자신만의 신념.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멋있었다. 겸손한데 우아하고 힙하고 안팎으로 꽉 찬 느낌. 많은 경험을 하고 가진 것도 많았을 거라 생각되고 또 그것을 나누는 삶을 사는 사람을 통해 나의 갈증이나 힘듦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도 있을거라 생각이 든다. 워킹맘들이 다 같은 마음으로 댓글을 달았으니까. 밀라논나님은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길을 혼자 가면서 이악물고 극기 훈련하면서 했다'. 위기의 순간에 나는 이렇게 했다의 이야기가 많지만 결국 본질은 같은 것 같다. '그럼에도 했다. 왜냐면 내가 간절하고 원했으니까' 일단 밀라논나 님의 핏이 너무 예뻐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봄 옷을 샀다. 크로스 매치를 떠올리면서. 아 그리고 내 주식 200만원은 폭락했다. 커뮤니티에서 매도 타이밍이 '경제에 대해서 좆도 모르고 신용카드만 긁던 친구가 주식을 하겠다고 할 때'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친구1인걸 어떻게 알았지...?
2월 졸업자 모임에서 '그렇게 마케팅을 하고 싶었는데 진짜 마케터가 되었잖아, 넌 우리의 신비야'라고 말해준 정선생님의 말과, 코로나로 얻은 긴 여유를 통해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을 수 있었다. 마케팅, 정확히는 기획을 하고 설득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결심이 섰다. 내 삶의 의미는 내가 만드는 거니까, 남들이 정의내리는 시기는 신경을 덜 쓰기로 했다. 되든 안되든 실행을 할 예정이다, 동글이 말대로 안되더라도 왜 안되었지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으니까. '인내'가 필요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고, 그 시기가 지금일까봐 사실 두렵기도 하다. 그치만 난 아빠를 닮아서 해야 되는 건 해야되는 사람이니까. 오늘도 성당에 가지 않지만 나를 살펴봐주고, 또 이번에도 좋은 기회로 닿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내가 노력하는 것에는 항상 결과물이 좋았고 남들보다 운도 좋았어서 신은 나를 좀 더 편애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전 팀 보다는 더 나은 여건이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필드에 올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느님 제 간절함이 지난 팀에서 갈구하던 것보다는 비교적 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성장하고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제대로 불사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지난 1년 평온한 환경에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어쩌면 다시 이런 생활을 또 그리워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한 계단 더 올라가기 위한 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세요. 나태해지지 않고, 안주하지 않겠습니다. 새로운 시험에서는 저를 더 잘 살피며 지난 번 보다 영리하고 슬기롭게 이겨내겠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대로 되는 것을 믿습니다. 뜻대로 기회를 주신다면 솔직하게 이왕이면 좋은 환경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세요. 저 이번엔 진짜 성당갈게요. 정말 갈게요. 정말이요. 고해성사하고 정말 말씀주시는 보속 받을게요. 사랑해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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