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독서 에세이
김지수 작가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에 대한 독서 기록입니다. -2020. 09. 10
인생은 왜 이따위일까요. 나름 잘살려고 스펙도 쌓고 싫은것도 참고 아득바득 청년 시절을 갈고 닦았는데, 왜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고 오히려 실망할 일만 더 늘어나냐 말이죠. 정말 엔드스펙없는 현실RPG ㅈ망겜
거기다 소위 멘토라는, 롤모델이라고 하는 잘난 사람들은 많은데 지친 삶에서 믿고 따라 갈 등불같은 사람은 당최 찾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때 만난 것이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이란 책입니다. 제목처럼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이라 하는 어른들을 인터뷰하여 묶어 낸 책인데요. 평균연령 72세 노인들은 우리가 삶에 대해 느끼는 온도에 기꺼이 공감하면서도, 먼저 삶으로써 알아낸 '삶의 요령'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알려줍니다. 마치 쇼핑몰에 있는 상품의 한달 사용 후기랑 비슷하달까요? " 먼저 인생 패키지를 써보니 이건 좋고 이건 구리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아쉬운대로 요렇게 씀 "
그들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는지를 들어보면, 처했던 상황이 우리랑 비슷해 놀라기도 하고, 탁월한 삶의 태도에 무릎을 탁 치게 되기도 합니다. 그 노인들의 말이 뻥카가 아니라는 건, 그들의 삶이 증명해주죠. 다들 한번쯤 이름 들어본, 사회에서 한가닥하신 분들이거든요. 비록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책을 읽고 '나를 더 믿고 인생을 살아도 나쁘진 않겠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16명의 이야기 중, 가장 발칙하고 사랑스럽고 섹시함이 글에 절로 묻어나는 윤여정 인터뷰 편을 먼저 꼽았습니다. 이후에도 인터뷰 3~4편을 더 적을 것 같고, 전체 필사는 따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글이 너무 좋아, 인상깊었던 인터뷰 내용과 토막 생각 중심으로 리뷰를 구성했습니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진정한 어른은 성취의 업적에 압도당하지 않고 '일한다'는 본연의 즐거움을 오래 누를 줄 알았다. 그것은 '성공과 열심'의 뒤틀린 동맹에 적잖이 실망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성찰의 실마리를 안겨준다. (중략) 그들의 말이 '꼰대의 잔소리'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정직과 결핍과 특유의 다정함 때문이다. (중략) 끝으로 치열하게 삶의 영감을 찾으며, '나'라는 자아를 건축해 가는 이 땅의 모든 개별적인 인생 철학자, 바로 당신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건투를 빈다. - 작가의 말,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 애초에 <윤식당>은 슬로 라이프 콘셉트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주 멀리 와버렸어요.
ㄴ 그게 너무 열심히 한 내 책임이 크죠. 노인네가 미친 듯이 봉두난발을 해 가지고 뛰어다니니, 저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을 거야. -왜 그렇게 열심히 하셨어요?
ㄴ 못하는거 하니까 열심히 해야지. 손님이 오니까,나도 주워들은 건 있어서 잘은 못해도 음식은 뜨끈뜨끈할 때 내가면 왠만큼 맛있다는 건 알거든. 그러다 보니 칼에 베이고 불에 데고 온몸이 상처야. 이 상처가 영원히 남아야 내가 나영석이를 계속 갈굴 수 있어. 이 상처 때문에 내가 미스코리아도 못나간다고. (웃음)
살면서 예기치않게 해야 될 것들을 맞닥들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때, 할 것에 대한 윤여정 배우의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는 첫 구절이었습니다. 윤식당에서의 모습은 여배우의 프라이드라는 것이 칼을 들거나, 불로 얼굴이 데워지는 것들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습이기도 했죠. 평생을 요리를 안하고 살았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 책임감을 가졌던 그녀. 사실 저는 윤식당을 보는 내내 그녀의 권위를 따지지 않는 다정함과 열의에 푹 빠졌었는데요. 예능에서 윤여정 배우가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이유는 솔직하면서도 최선을 다한 느낌이 보여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과연 내가 나이가 들어 가진 것이 많아졌을 때도, 그녀처럼 '못하는거 하니까 열심히 해야지'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 처음 해 보는 사투리 연기도 그렇고, 예능 다큐<윤식당>의 개업 셰프도 그렇고, 항상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숙제하는 마음으로 사시는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는 못해도 숙제는 해갔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
ㄴ 그게 아들 야단치다가 알았어요. 미국 학교는 숙제, 퀴즈, 시험, 출석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성적을 내는데, 얘가 숙제를 안 해서 내가 깜짝 놀랐거든. 그 얘길 했더니, 성우 송도순이 "언니는 숙제해 갔수? 난 안 했는데"하더라고. 나는 누가 미션을 내주면 잘하든 못하든 꼭 해서는 갔어요.
다이어트도 급하게 하면 결국 다시 요요가 오듯이, 삶의 태도라는 것도 단숨에 바뀔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 마음먹는 것이 중요하겠죠. 난 이미 글러먹은 건가 싶으면서도, 저렇게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숙제하는 마음을 가진 인생 선배를 보면 나도 저런 멋진 어른으로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달까요. 내 또래의 누군가가 후에 늙은 나를 저렇게 봐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다르게 먹을 필요가 있겠죠. 책을 읽으면서 몇 문단에 한번 씩 마음을 다잡았을 만큼 너무 보석같은 말이 많았습니다.
- 임상수, 홍상수, 이재용 그리고 지금의 나영석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노예근성이 그들과 함께 찬란하게 꽃을 피웠네요.
ㄴ 임상수 감독이 나중에 고백하더군. <바람난 가족>(2003)에 나를 캐스팅할 때 내가 세 번째 후보였대요. 간혹 후배들이 "이 역할은 당신밖에 못 해요" 이런 말에 혹하는데, 인생에 그런 거 없어요. 알고 보면 나 말고도 열 명 넘게 후보가 대기 중이라고. 홍상수 감독도 아마도 아는 늙은 여자가 나밖에 없어서 불렀을 거야. 그이가 하는 작품이 다 남녀상열지사인데, <하하하>(2009)같은 영화에서도 내가 중요한 역할은 아니었잖아. <바람난 가족>이나 <돈의 맛>(2012) 같은 임감독 영화들도 아마 다른 나이 든 여배우들이 곤란해서 거절했을걸. 노출도 심하고, 세스신도 있고... 나야 뭐 그때 급전이 필요해서 했지만.(웃음)
- "최고의 연기는 돈 필요할 때 나온다"는 명언이 그때 나왔지요?
ㄴ 하하하. 그랬어요. 난 실용주의자였어.(중략)
- 돈과 일에 대해 자신만의 신조가 있으신가요?
ㄴ 돈은, 돈은 타고나는 거예요. 우리 엄마 말씀이 작은 돈은 저금해서 모으는 거고, 큰돈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거랍니다. 내 인생도 내가 일해서 번 것이 아니면 보너스라는 게 없었어요. 언젠가 누가 권해서 주식을 했다가 모두 날렸어요. 돈 잃은 날, 친구들 모아서 밥 사주고 술 사줬지요. 일에 대해선 그래요. 나는 예순 살까진 하기 싫은 일도 많이 했어요. 아이들 키워야 했으니까. 애들이 장성한 후엔 딱 결심을 했죠.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치를 좀 부려야 겠다. 예순한 살부터 내가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하고만 일해야겠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만 하면 확실히 돈은 안돼. 싫어하는 일도 해야 돈이 되는거지.
전세가가 폭등하고 집 값 오른다는 유투버들이 다 잘려나간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의 최대 관심사는 돈이 아닐까요? 사실 제가 그런데요. 돈에 대한 그녀의 철학도 삶만큼 실용적임을 알 수 있는데, 이토록 실용적인 어른이 있어 개인적으로 무척 다행이라 느꼈습니다. 급전이 필요하면 싫어하는 일도 한다는 솔직함은 '그래 세상 사는게 다 똑같은 거지 뭐'하는 안도감을 주었거든요. 그의 이야기에 더 설득되는 이유는, 비슷한 삶이라 느낌에도 중년까지 멋지게 살아낸 여정이 삶의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겠죠. 또 하기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확실이 돈이 안되는 일이라는 말도 얼마나 친근감 있나요. 각자의 인생 선택지는 열어두되, 먼저 살아보니 이런건 확실히 좋더라는 말이 정말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수 작가의 말처럼 윤여정 선생님은 70대가 되어도 여전히 진한 장미향을 풍기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 산전수전 다 겪고 유머 감각이 풍부해도 긴장하실 때가 있습니까?
ㄴ 일할 때는 늘 긴장해요. 첫 촬영 때는 특히 긴장을 많이 하지. 언제쯤 나도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맘을 바꿨어요. 영원히 긴장하려고. 배우가 너무 편하게 하면 그것도 이상해요. 연기를 잘해서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이면 그게 농익은 연기인가? 난 아닌 것 같아. 묘한 경계선이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최선이 보였으면 좋겠어. (중략)
- 언제 행복하신가요?
ㄴ TV는 대사가 많잖아요. 그래서 나는 녹화 전에 불안해서 잠도 안 자고 대본을 닳도록 보고 또 봐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감독도 그 열성에 놀랐다잖아. 인간이 소화 할 수 없는 정도의 대사까지 외워서 다하고 집에 와서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해요. '오늘 미션을 내가 잘 끝냈구나..' 그럴 때 행복해요.
- 평생을 노력한 사람이군요.
ㄴ 감사하게도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봤어요. 그러니 노력했지. 나를 칭찬하거나 예쁘다고 해도 믿질 않았어요. 너무 노골적으로 말해서 인심 사나워 보인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다른 사람한테도 진실을 말해 줬다고. 알고 보면 사람들도 내가 안예쁘니까 멋지다고 하는 거잖아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평생 노력하는 것을 잃지 않고 살아온 배우계의 거장. 이따금씩 최선을 다한 내가 바보같아지는 상황이 벌어질 때 우리는 낙심하고 삶을 불신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을 숱하게 겪었을테지만, 그럼에도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온 윤여정 배우에게 한 수 배우며 박수를 보냅니다. 모두가 아는 배우임에도 70세가 넘어서도 긴장하고 노력한다잖아요. 세상에 손해본다는 마음을 좀 버리고 최선을 다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각자 느끼는 부분은 다르더라도, 윤여정 선생님의 이야기가 많은 분께 닿길 바랍니다 :)
'글과책 > 서평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틈의 온기 독서 에세이 (1) | 2023.11.13 |
---|---|
소소한 즐거움 독서 에세이 (0) | 2023.11.10 |
심신단련 독서 에세이 (0) | 2023.11.08 |
신입사원 빵떡씨의 극비 일기 독서 에세이 (0) | 2021.01.20 |
5년 후 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독서 에세이 (0) | 2021.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