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되고싶다
작년 1월 우리 실에 신입 2명이 들어왔다. 중고 신입인 요우님과 갓 대학 졸업하고 입사한 샤오님이었다. 둘다 옆 팀이었기 때문에 딱히 신경을 쓰진 않았다. 우리팀 코가 석자인데 무슨. 게다가 경력으로 들어오거나 계약직으로 시작하신 분들은 공채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니까, 농담으로라도 공채가 공채 챙긴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분들과 나는 어색한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분들과 다시 마주치게 된 건 런칭 즈음이었다. 당시 우리 실 실무자 중 런칭 경험이 있는 건 내가 유일했기 때문에, 이벤트 라이브나 배너 스케쥴링 등의 일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원래는 옆팀 업무이기도 했어서 '백업'이라는 이름으로 실무자가 붙었는데, 그 분이 공채로 들어온 샤오님이었다. 런칭과 업데이트 커뮤니티 전체 관리는 신입 1분이 혼자서 쳐낼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 생각했지만, 우리팀이 아니니까 뭐, 따로 코멘트하지 않고 넘어갔다.
원래는 저쪽 팀 일인데 내가 90%를 하고 있는 것에 못마땅함을 느끼고 있었고, (내 성과도 아닐) 다른 팀 막내를 내가 가르치는 건 더 싫었었다. 그래서 업무 분배 후에는, 모르는 부분을 팀 내 실무자분께 물어보라고 했다. 귀찮아서 신경쓰고 싶지 않아서 한 말이었다. 업무를 못한다 한들 그건 팀의 매니저와 선임의 잘못이지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다. 종종 샤오님의 자리에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팀에서 업무적으로 도움을 잘 못주구나 싶었지만 그냥 그러고 말았다.
한동안 무관심하다가, 요새 사무실에 잘 모습이 보이질 않아서 옆팀 동료분께 물었다. 재택 근무 중이냐고. 그랬더니 씁쓸한 웃음과 장난끼있는 모습으로 대답해줬다. "몰랐어? 샤오님 몸이 안좋아서 지금 휴직 중이야"
샤오님이 종종 허리가 안좋았다가, 목이 안좋아서 커다란 기구를 목에 끼우고 일하는 것도 본 적이 있어서 건강 상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들어보니 공황 증세가 있어서 잠시 쉰다는 거였다. 이야기를 듣고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나는 그걸 눈만 가리고 아웅하고 있었구나 하고.
일요일 오후 4시만 되면 회사를 가야 할 생각에 눈물을 흘렸던 나의 1년차, 선임 없이 혼자서 5~6년차 팀원들과동등한 일을 했던 나의 1년차, 아무것도 모르는데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뒀던 나의 1년차, 그럼에도 잘난척하는 아저씨들을 보며 아득바득- 인간 혐오에 찌들며 매사 늘 화가 나 있고 억울해했던 나의 1년차, 프로젝트 중간이 지나자 긴장이 풀어져 응급실까지 갔던 나의 1년차
같은 상황을 겪었음에도 옆팀이라는 이유로, 공채가 공채를 챙긴다는 얘기를 듣기 싫어서, 월권이라는 이유로 샤오님의 어려움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미안함이 커졌던 이유는 샤오님과 업무 중에 들었던 목소리와 장면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니, 도대체 아무도 안알려주고 어떻게 하는 지도 하나도 모르는데 무작정 하라고만 하면 어떻게 하는거에요. 이걸."
내가 샤오님께 마지막으로 들었던 한 마디. 업무 진행 상황을 묻자 울먹거리는 얼굴로 나에게 이야기했던 샤오님의 말. 곧바로 팀 선임이 와서 너무 감정이 과한 것 같으니 침착하자고 타일렀던 상황, 아차 싶은 얼굴을 했지만 억울함이 가시지 않았던 샤오님의 표정. 돌이켜 보니 그 후로 샤오님은 팀에서 밥을 안먹기 시작했고, 사무실에선 잘 웃지도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누구의 잘못이라 판단하거나 넘겨짚을 수는 없다. 다만 같은 상황을 겪었던 내가 따뜻한 말이라도, 아님 회사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해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지금은 떠났지만 나는 그래도 같이 회사 욕을 한바탕 했던 분이 있었는데.. 샤오님에겐 누가 그런 분이었을까. 아니 있었을까?
선배란, 같은 분야에서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을 이야기한다. 보는 앞에서 대단한 일을 해내거나 선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먼저 경험했을 어려움을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선배의 역할을 해줄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내가 겪었던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을 지 들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2명의 인턴과 3명의 신입 공채들을 팀에 맞았지만 그 어느 때도 그 따뜻함을 주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다 지나버리고 난 후 쓰는 후회의 글이지만, 다음에는 꼭 선배로서 힘든 일을 들어주고 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에 사무실에 나오게되면 아무 말 없이 커피 한잔 사드려야지.
'글과책 > 수필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확실한 삶을 사는 방법 (0) | 2023.11.13 |
---|---|
귀여운 삶의 의미 (1) | 2023.11.13 |
마음의 그릇을 비울 수 있다면 (1) | 2023.10.30 |
우주 여행자의 하루(A day of Cosmo-Rider) (1) | 2023.10.27 |
나의 천성 (1) | 2021.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