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단련 필사
💡 이런 분들이 읽으면 도움되는 책입니다 💡
1. 솔직하고 농도 진한 에세이를 읽고 싶다
2. Super ego 에너지를 뿜뿜 받고 싶다
3. 이슬아 광팬 = 나
유일하게 다 읽은 책을 다시 보게하는 작가. 이슬아. 에세이를 쓰는 작가인 그녀는 자신이 겪고 주변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들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내가 좋아하는 슬아 작가의 부분은 편향되지 않은 시선, 솔직함, 주변 사람들에게 대하는 사랑과 애정에 대한 것들이다. 작가의 글을 볼 때 마다 '내 안의 것이 풍족하면 타인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고, 내 신념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사실 반대로 신념이 있고, 주변 사람들이 무조건 적인 사랑을 줄때에야 내 안의 것이 풍요로워 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튼 슬아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내 자신이 더 사랑스럽게 느끼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 사랑을 나눠주고 싶어진다. 나는 이걸 슈퍼에고 에너지라 혼자 생각하는데, 이런 에너지와 고양된 마음을 타인에게 줄 수 있다는 건 참 부럽고 멋진 일인 것 같다. 오늘은 그렇게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의 심신단련, 문장 일부를 필사하고자 한다.
잘가 엄마! 응 내일 봐! 하고 헤어진다. 이어지는 밤과 새벽과 아침. 그리고 다시 만나는 복희. 지금이라고 인생이 우리의 손에 쥐어져 있나. 사실 영영 불가능하지 않나. 그저 이 날들을 흐리멍덩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모른다. 또 다시 잃어버린 시절로 기억하지 않기 위해 복희와 먹고 얘기하고 걷고 만나는 순간을 이렇게 적는다.
/손에 쥔 인생, 심신단련
쓰레기가 쓰레기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 손에서는 그랬다. 나는 쓰레기를 잠깐씩만 만져왔으므로. 더군다나 쓰레기는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직 쓰레기가 아니었으므로. 쓰레기란 내가 원하는 물질을 깨끗하게 감싸던 것. 손과 물건 사이의 얇고 가벼운 한 겹. 어느새 불필요해진 제품. 버리고 돌아서면 사라지는 기억. 그래서 아주 잠깐이었던 무엇. (중략) 쓰레기와 관련된 어떤 노동자들은 밤에만 일해야 한다. 누군가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과정을 보는 것 조차 불쾌할지도 몰라서. 자기 손을 떠난 쓰레기를 곧바로 혐오스러운 남의 일로 여기곤 해서
/쓰레기와 부모와 시, 심신단련
아픈 남편이나 자식과 함께 무언가를 먹은 뒤 치우는 뒷모습들을 보며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 비빌 언덕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내가 아프면 복희와 웅이는 언제든지 달려올 것이다. 내 부모는 돈이 많지 않지만 늘 다정하게 내 뒤를 살펴주는 이들이다. 그런 부모를 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마만해도 간병을 해줄 사람이 나말고는 없었다. 내가 없어도 혼자서 어떻게든 했겠지만 좀 더 고단했을 것이다. (중략) 폐에 관을 꽂을 하마가 높은 침대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프지 않은 쪽의 팔을 뻗어 내 이마를 매만졌다. 익숙한 손에 쓰다듬어지자 나는 속수무책으로 잠들었다. 아픈 애보다 먼저 잠드는 것에 대해 해명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 잘 먹고 잘 자야 된다고, 그래야 내일도 지치지 않고 즐겁게 병원에 머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졸려서 입이 안얼렸다. 집에서처럼 하마가 나를 재워서 병원인 걸 까먹은 채로 잤다. 우리는 적당히 서로의 언덕에 기대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비빌 언덕, 심신단련
임은 낡은 기숙사 벽에 기대앉아 내 뒷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얘길 꺼냈다. 누가 자기를 어떻게 놀렸는지, 선생님이 자신을 어떤 식으로 답답하게 여겼는지 하소연했다. 나는 '그랬구나'하고 잠자코 들었다. 몇 가지 조언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 임은 더듬거리며 고맙다고 말했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나는 분명 친절했지만 그 친절은 관대한 상사 같은 친절이었다. 권위를 쥔 친절이자 상대를 내려다보는 친절말이다. (중략) 그 후로 둘은 정말 조용히 편지를 주었다. 나를 꾸준히 좋아하되 눈에 띄는 친구가 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기숙사에서 애들이 안 보는 틈을 타 몰래 편지를 건넸을 임과 준의 모습을 지금도 생각한다. 편지를 부디 조용히 달라고 요구하는 열네 살의 내 모습도 뒤따라 반복 재생된다. 그런 일은 자꾸만 기억이 난다. 어떤 부끄러운 짓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중략) 그들의 졸업식을 구경하는 날엔 난데없는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커튼 뒤에 숨어서 부끄럽고 비겁한 나의 청소년기를 기억한다. 스물 여덟 살에 목격하는 열 여덟 살은 너무 생생하여 꼭 어제 일인 것만 같다.
/여자 기숙사, 심신단련
그들이 다른 누군가와 더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안도를 느낀다. (중략) 그것은 사랑이 가져다 줄 수도 빼앗아갈 수도 없는 소중한 것이다. 나는 창문과 대문을 서성이며 그들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마치 해시계처럼 무한한 인내심으로 항상 너그럽게 그들을 이해한다. 사랑이 결코 이해 못하는 것을. 언제나 관대하게 용서한다. 사랑이 결코 용서 못하는 것을. 첫 만남부터 편지를 주고받을 때까지 영원의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단지 며칠이나 몇 주일만 기다리면 된다. 그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성공적이다. 음악회에 가도 끝까지 집중할 수 있고, 대성당을 구경할 때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다. 주위의 모든 풍경도 또렷하게 잘 보인다. (중략) 만일 내가 삼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서정적이지도 않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지평선, 실존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그들의 덕택이다. 그들 자신도 모른다. 맨주먹 안에 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움켜쥐고 있는지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말(인용)
환경 문제를 투자와 산업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내 앞에서, 인문과 누군가의 생활로 이야기하는 슬아 작가가 있었다. 누구나 있었을 미숙한 청소년기를 담백하게 고백한다. 사랑에 대한 여러 형태를 써내려간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또는 그 사랑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하기도 한다. 흘러가는 하루를 되돌아보고 글 쓰며, 같은 나이지만 매일 풍족해지는 슬아 작가를 생각하면 배가 아프기도, 부럽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일면식도 없지만 언제까지나 응원하고 싶고, 또 잘되었으면 좋겠는 사람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신작인 부지런한 사랑을 읽었는데, 사람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 한번 느끼게 해준 것 같다. 워밍업으로 책을 한번 읽어볼까,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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