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에게 반응하고있어요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사랑이다>라고 하지만, 사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은 원초적인 본능이 아닐까.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 손바닥 밑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강아지처럼 말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리 준비되지못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서툴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상황에, 우리는 종종 얼굴이 빨개진다. 우리는 얼굴이 빨개질때 민망해한다. 서로가.
당신은 맥락없는 내 질문에 자주 얼굴이 빨개지곤했다. 친구들과 목욕탕에 다녀왔단 말에 물은 '넌 어느 부위에 때가 가장 많이 나와?'라는 질문에, 가만히 당신의 얼굴을 보다 물은 '넌 언제부터 목젖이 그렇게 나왔어?'라는 질문에 너는 자주 얼굴이 빨개졌었다. '2차 성징이 일어날 때였겠지 뭐.' 하고 넌 대답했었다. 또는 '내가 너한테 물으면, 넌 뭐라고 대답할꺼야?'라고 내게 다시 물었다. 그러게, 난 어디쪽이 때가 많이 나오더라, 등이었나.
알고 만난지는 꽤 되었음에도 아직까지 내게 얼굴이 빨개지는 당신을, 나는 더 좋아하게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상태에서도 얼굴이 빨개진다는 건, 어쩌면 나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고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당신의 마음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얼굴이 발그레지는건 나에게 '나는 아직까지도 당신에게 반응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신호같았다. 오직 둘만이 알 수 있는 언어로 알려주는, 재밌고도 신선한 사랑의 전달방식.
나는 당신의 하나하나가 모두 다 좋다. 찡그릴 때, 찡그리며 웃을 때, 웃을 때 보이는 가지런한 이같은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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