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의 글쓰기
"사실 난 나한테 맞는 옷을 몇 개 알고 있어"
저녁으로 서브웨이를 먹으며 미리언니와 이야기하는 도중에 나온 말이다. 대화 도중에 나온 말이라 어떻게 설명하면 좋으려나, <하면서 열정이 솟는 일,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라고 풀면 될지 모르겠다. 청년같이 협동조합 대표이자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리더인 언니가 생각하는 옷은 <아이들, 특히 10대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라고 했다. 맞아, 언니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꼭 10대가 아니더라도, 언니의 그런면 때문에 주위에는 늘 사랑하는 사람이 가득한 것 같다. 격한 공감을 표하다 "저는 글을 쓰는 일이에요"라고 말했다.
물론 글을 잘 쓰진 않지만, 네이버 포스트에 쏟아진 관심이나 개인적으로 오는 연락 때문에 '남에게 보여지는 글쓰기'를 은근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몇 달 전까지 타인에게 글을 통해서 어떤 영감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정,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일까, 자기전에 생각해본 결과 그건 아니다 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글쓰기는 책, 그리고 경험을 통해 얻은 감정과 생각들을 체화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사람을 풍부하게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확하게 한다는, 이 구절을 찻잎 우리듯 계속 써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머릿속에 떠도는 단어와 구절들을 하나씩 잡아채 문장으로 만든다. 말하기 보다 글에 강한 나는, 글을 쓰면서(만) 내 입장을 구체화 시킬 수 있다.
이번 2016년의 목표 중 하나는 많은 글을 쓰고, 많은 책을 읽자는 거였다. 생각해보니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 여겼는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의문이 들었다. 난 왜 책을 읽고 싶어하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 얼마안가 항상 입술로 되뇌던 말들이 생각났다. 요약하자면, 인턴하면서 내 생각의 한계를 느꼈으나 나를 계발할 시간이 부족했기때문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 였다. 오늘에서야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인턴 때 책과 글쓰기를 열망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 사실 깊숙히에는 사회로 나온 24살의 나는 강요하고 평가하는 집단문화에서 꼿꼿이 서있기에 너무 어리고 말랑했다는거다. 그래서 수없이 흔들리고 휘둘렸고, 그 마음을 붙잡기위해서 찾았던 유일한 방법이 독서였고 글쓰기였다. 마음을 나눌 사람도 없고 나약해보이기 싫었던 내가 유일한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었던 방법은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부들부들 거리는 거였다. 아직까지도 내가 인턴시절을 떠올리며 부들거리는 이유는 문유석씨가 말했던 <집단주의>의 전형을 보기도했고 무엇보다 '그때 더 자유롭고 단단했더라면'하는 때 늦은 후회가 들어서라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도 이번 상반기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 세계관을 정확하게 하고 싶다. 개인과 집단, 헌신과 담보성거래, 사회와 대안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다음에야 내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모자라고 서툴지만 나를 위해 방황하는 현재의 고민들을 기록하고 단단하게 다져나가고자 글을 쓰고, 이야기 하고 싶다. "자, 내 생각은 이런데 넌 어떻게 생각해?"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갸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 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의 한 장면이다. 텀블러에서 보다 좋아서 가져왔다. 김승옥은 25살 이 글을 썼다. 스물 다섯이 되어 취미가 글쓰기라 말하지만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서도 오늘에야 알았다. 이렇게 나는 겨우 취미를 만들어 나가고 있고 겨우 내 세계관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글을 쓰는 이유, 내 25살의 방황적 글쓰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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