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나의 전부같은 일부
‘메기 효과’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미꾸라지 어항에 메기를 풀어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다니느라 더 활발하고 건강해진다는 이야기다. 약육강식의 긴장감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인데,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로 동물들이 포식자를 만날 경우 오히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움직임이 둔해지고 생기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즉, 메기 효과는 결과가 긍정적으로 풀렸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통상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을 반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비슷한 얘기로 나는 직책자 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으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을 가거나. 상사들은 약육강식에서 스스로 살아남듯, 일하며 생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도 실제로는 틀린 내용이다. 스트레스는 몸에 축적될 뿐, 좋은 식사나 격한 운동으로 스트레스 자체가 줄어들지 않다는 것이 최근 증명되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쌓이는 소포vesicle 는 자극에 따라 늘어날 뿐, 다른 활동으로 분비량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밝혀진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실험에서는 스트레스는 최대한 피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 한다.
앞서 이렇게 과학적인 내용을 나열하는 이유는, 이야기 하기 앞서 군기를 잡거나 철야정신을 강조하는 사회의 기준에 주눅 들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을 쉽게 다루기 위한 우화들일 뿐 실제는 어떠한 근거도 없는 가짜이다.
그럼에도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고, 우리의 일상이 메기들로 넘쳐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 것이 상사든, 동료든, 일이든 간에. 스트레스 받을 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쉽냔 말이다. 당장 회사를 때려칠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한 소리 할까 싶다가도 모든 것들이 내 연봉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하면 숨을 크게 삼키게 되는 것을.
스트레스는 자체만으로도 벅찬데, 더욱이 우리가 부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게끔 만든다. 상황이 내게 불합리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계속 되새김질하거나, 스스로의 존엄을 깎아 버리게 한다. 어느쪽이든 그 상황에 스스로를 가둬두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스트레스를 정면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능력없는 메기들을 고발할 방법을 생각하거나, 메기에게 치인 것에 분개했다. 미워하고 되새김질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일요일 오후 4시만 되면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여행을 가도 금새 돌아가야 하는 회사 생각에 맛있는 밥과 멋진 풍경 앞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 아무것도 내게 전부는 아니다. / 그러나 / 나의 전부 같은 일부의 것들아 / 무엇에도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
그럼에도 아무것도 내 존재의 전부가 아니다. 이 사실을 알아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이든, 사람이든, 스트레스로 온 신경이 그것에 집중되는 사이 우리는 지극히 일부인 것에 스스로가 매몰되어 있던건 아니었을까.
내게 회사 일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결과물이자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나 자신의 가치를 회사에 증명하고 싶어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일에 쏟아부었다. 그 과정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갈등을 겪으면 속상해 했다. 남 탓하는 사람, 알맹이 없는 사람, 나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 권위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다 내게 메기였고 스트레스였다. 돈을 버는 일이어서 그랬을까? 막연히 다음 목표가 없어서 그랬을까. 머리로는 일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록 나는 일과 평가와 시선에 매달렸다.
처방전을 발견한 계기나 과정은 복잡했지만, 결국 내 삶은 ‘회사’라는 구성 요소가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스물 아홉의 차연 안에는 글을 쓰는 나, 책을 읽고 생각하는 나, 그림을 그리는 나, 눈빛이 반짝이는 나, 태도를 중요시 여기는 나, 분위기를 사랑하는 나, 동물을 좋아하는 나, 그리고 ‘일에 성취감을 느끼는 나’가 함께 있었다. 나의 전부같은 일부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나서야, 그제서야, 일 속에서 버둥거리는 나를 꺼낼 수 있었다.
나를 꺼내는 일은 비록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닐 수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손 쓸수 없는 상황과 이해 관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위해서는, 여러 모습의 나를 항상 곁에 두고 어느 하나에 쏠리지 않도록 노력 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우리들이 여러 모습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확신했으면 좋겠다. 실제로 이후, 나는 더 뚜렷해지고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었다.
' 무언가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노력은 / 부족함의 영역이 아니고 / 풍요로움의 영역이다. '
덧붙이자면 일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심과 성과로 인정받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성과와 인정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이제는 이해하고 있고, 타인과의 갈등이 나의 일부 중의 아주 작은 부분임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매 순간 일에 몰입하되 매몰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내 일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진다.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한 내 마음 속 무언가를, 강준서님의 글을 통해, 정리하려고 한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모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질 높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말하는 극한은 어떤 노력의 최대치는 아니다. 내가 높이 평가하는 내 인간성의 한 부분들을 파괴시키는 극이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이 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공감을 하고 눈을 맞추는 사람. 나를 망가뜨리거나 깨뜨릴만한 극한의 상황을 둥글게 다루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생략) - 질 높은 삶- '
오늘도 기록한다.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을 담아두기 위해, 어떠한 것도 매몰되어 부정적인 것들이 나를 잡아 먹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상황에 못이겨 반짝이며 노력하던 것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화초를 돌 보듯 내 구석구석을 보살펴야지. 어디 시든 곳이 없나 잘 살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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