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가 자세를 고쳐잡는 법
2019년의 나는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2월에는 새로운 조직에서 새로운 일을 배웠고- 7월부터는 배운 것을 바탕으로 시장에 나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편의상 프로젝트A라고 부르도록 하자. A는 현재 모두의 주목을 받고, 누구든 A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입사 동기인 경오빠도 최근 A에 참여하고 있는데, 왜 풋내기가 A에 참여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시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경오빠는 잘 보이기위해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한다. 나의 어떤 면이 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실 조직 장은 나에게도 A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기회를 주었다. 비록 난 아침 7시에 출근하지는 못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고 잘 해내야겠다는 기합을 넣으며 A를 준비하고 있다.
처음 새로운 조직에 왔을 때, 나는 나를 증명해야 했다. 나의 쓸모와 가능성을 조직 장들이 발견할 수 있도록, 나에게 기회를 주고 기대감을 가지도록. 따로 면담 신청을 해서 내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검증을 하고 시험을 하는 것 같은 일에는 요령 없이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 시험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곳에서의 나는 미숙한 부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므로) 이번 프로젝트A는 나에게 주는 기회이자 나의 역량을 보는 하나의 시험인 셈이다. 그래서 신중하게- 그러나 늦지 않게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적당한 시간에 원하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매 순간마다 필요한 만큼의 인풋(영감)과 역량(기지)이 있어야함을 느낀다. 알량한 지식이 먹히는 어떤 날은 일을 해내기도 하도, 다른 어떤 날은 죽을 쑤기도 한다. 늘 그렇듯 여전히 부족함과 조바심을 느낀다.
채우는 것에 대한 갈증, 결과물에 대한 짜릿함(자기만족감,우월감)은 20살 이후의 나를 만들었던 동력이었다. 그 동력 사이에는 남에 대한 시기도 있고, 동경도 있었다. 어떤 기간에는 기술과 솜씨를 다듬기도 했고, 어떤 기간에는 보는 눈 높이를 키우고 나를 더 살피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나만의 곧은 줄기, 그 줄기를 증명할 수 있는 부끄럽지 않을 실력. 그리고 이를 지속할 수 있도록 늘 겸손한 자세로 탐구하고 매 순간 모든 상황과 사람에게서 배우고자했다. 의식적으로. (사담이지만 그 뼈대에는 미성년자 친구들이랑 술마시며 생각없이 노는 것들도 포함됬다. 날것의 내 감정을 살피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기억으로, 나를 만드는 경험들이 꼭 거창하거나 학구적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 나를 갈고닦는 일은 지금도 내가 1순위로 두는 일이기도, 가장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조직에서의 일은 여전히 내게 긴장감을 주고 있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초석이 되 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성장하지 않는 사람, 고여있는 사람'이 될 까봐 종종 불안하다. 스물 여섯, 업계에서 알아준다는- 나름 좋은 여건의 회사에 입사했지만 함께 일하는 구성원 모두가 반짝이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있거나, 익숙해진 일만 하며 '밥값'만 하면 된다며 자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운이 나쁘게 너무 일찍 직책을 달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남을 낮추면서 자신을 과시하기도했고, 자기 확신이 없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기도 했다. '반면교사'를 마음에 새기며 나는 멈추지 말아야지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미생에서 한석율이 성대리를 보면서 느꼈던 것들 말이다. '저 사람도 처음부터 저렇진 않았을 거 아니야? 마냥 기다리기엔 나도 저렇게 될까봐 무섭다'
한편 오늘 나는 회사 동료 젤리랑 일하는 직장인을 3분류로 나눴다. 첫째는 주어진 일을 해내거나 못 미치는 수준으로 완성하는 케이스. 이런 경우 보통 '밥값'만 하면 된다는 논리로 자신을 변호한다. 연차가 쌓이면 그에 맞게 실력도 늘어야하는데- 본인이 밥 값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게되고, 결국 연차와 연봉은 오르는데 성과만 오르지 않는 사람이 된다. 투자 대비 효과가 안나오는 데도 본인은 짬으로 때워 온 익숙함을 능력으로 착각한다. 동글이도 언젠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내 주위에 자기 밥 값만 하면 된다는 사람 중에 일 잘하는 사람, 진짜 1인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봤어. 오히려 일 잘하는 사람들은 항상 본인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3분류를 설명하거나 누군가를 비하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가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첫번 째 분류와 너무 닮아서였다. 언젠가 나도 머리가 크고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처리할 때가 올텐데, 우월감과 질투가 8할인 나는 미래에 그 사람들과 다를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기회가 오지 않거나- 환경적인 이유로 안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을때는 나도 그들과 똑같아지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은 내릴 수 없지만, 그저 난 마흔이 되어서도 반짝이며 새로운 것을 배우며 성장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의식적으로 부족함을 되새기고 겸손과 배움을 상기시키는 것 뿐이다. (외부적인 기회나 환경은 운이 필요한 영역이니까) 그리고 묵묵히 해나가는 것- 1년 뒤의 내가, 3년 뒤의 내가, 10년 뒤의 내가 미래의 나를 변호하고 합리화 하질 않길 바라면서. 이렇게 글 쓰며 마음을 다잡듯이 말이다.
오늘 동글이와 태평 동네를 산책하며 옛날 주택가를 건너갔다. 실제로 살진 않았지만 각자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던 주택가. 서로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집들을 둘러보다 동글이 말했다. '아 그런데 이 집들 진짜 힘겨워 보인다.' 아까까지 웃고 떠들며 이야기했던 집들은 한 순간에 노후화된 구조물로 변해버렸다. 오래되어 어릴 적 추억 말고는 더이상 쓸모가 없는 구조물들을 보며, 문득 안주해버린 반면교사 선배들이 떠올랐다. 구식 구조물들이 기본적인 주거 기능만 제공하면 된다며 자기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뭐 그 집들도 구식이 되고 싶어서 된거겠냐만은. 또 한번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오래된 주택가를 내려오며 사진을 남겼다.
지금의 기회와 환경에 감사하고 매 순간 자라길 바라며, 성장하지 않은 나를 보며 미래의 내가 스스로를 힘겹다고 느끼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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