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 독서 에세이
이은호 <시절 인연> 독서 기록
깡패 곽철용에게도 순정이 있고, 소나기 속 소년에게도 설렘의 순간이 있다. 누구든지 또 어느 시기던지 우리 모두는 살기 위해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곤 한다. 첫사랑, 최고의 사랑, 마지막 사랑으로 손꼽히지 못한 숱한 사랑들이 쌓여 지금 우리를 살게 한다고 믿는다. 짧거나, 미숙하거나, 연약했던 인연들을 단편으로 풀어낸 책. 이은호 작가의 <시절 인연> 리뷰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지 못한 인연
책 속에는 결실을 맺지 못한 설익은 사랑의 단편들이 여럿 담겨 있다. 홀로 남겨져 살아가야만 하는 사랑, 불꽃같았던 추억을 불꽃으로 남겨두는 사랑,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사랑, 점차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사랑, 순수한 마음으로 희망을 남겨두는 사랑 등.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랑으로 부르지는 못하지만 마음을 내어줬던 그런 작은 인연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주제가 '결실을 이룬 사랑'이었다면 사람마다 감흥이 달랐겠지만, 오히려 그 시절 부대끼던 작은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서 새로웠다. 시절 인연은 모두에게나 있으니까. 대단한 영향을 준 사람들이 아니었음에도 시절의 작은 인연들이 겹겹이 쌓이며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책을 읽으며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그동안 스쳤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만났던 사람들은 좋은 기억도, 안 좋은 기억도 주었다.
나는 특히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을 엿볼 수 있던 '청춘 블루스'와 '종이학'의 글이 참 좋았다. '청춘 블루스'에는 어설프게 사귀기 시작하여 즐겁게 데이트하는 그 묘사가 디테일해서 모두의 풋풋한 사랑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 서로에 대한 진심을 확인하게 되며 다시 사랑을 약속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애틋했다. '종이학'에는 유일하게 종이접기를 매개로 마음을 표현하던 두 아이가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하며 종이학을 묻는 장면이 나온다. 평생 그 자리에서 변치 않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종이학을 묻자던 여자아이의 마음이 너무 예뻤고, 나도 언젠가 저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희미한 기억이 드는 작품이었다.
앞으로 만날 시절 인연에 대하여
전체적인 시대적 배경은 1970년~90년대로 추정된다. 책은 단편 소설이나 여러 등장인물의 서사는 작가의 유년 시절을 담고 있다고 한다. '나'로 시작하는 일인칭의 에세이를 단편에 녹여낸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한 번 더 헤아려볼 수 있었다. 3명의 등장인물이 작가의 어린 시절을 대신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직접 책에서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여하튼 책의 배경이 '과거'다 보니, 2023년 지금의 시절 인연과 또 앞으로 만날 작은 인연들을 떠오르게 했다. 회사를 옮기며 새롭게 업무 시간을 보내는 동료, 새롭게 알게 된 친구의 친구 같은 인연들 말이다. 이번 '시절 인연'도 브런치에서 작가님의 글을 보고 쓰게 된 감상인데 이것 역시 서로에게 실오라기 같은 인연이 아닐까 싶다. 굵은 줄기가 아닌 얇은 거미줄 같은 인연들은 모두에게 현재 진행 중이다. 그리고 과거 인연이 그러했듯,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가는 양분이 될 것이다.
책만 보고 '과거 시절 인연은 참 뜻깊군' 하기 전에, 지금 주변의 연약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 역시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담인데 회사-집 루틴으로 주변의 인연이 너무 부실하단 걸 느꼈다. 아 그래서 사람은 늙을수록 꼬장꼬장해지는 건가?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와 미래의 내 시절 인연도 동철의 색종이처럼 알록달록했으면 좋겠다.
시절 인연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기도 하다. 사람은 사는 곳, 만나는 사람, 쓰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기에 그 시절의 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시절 인연이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나를 애틋하게 하기도 하고, 감상에 젖게 만들기도 한다. 책 속의 시간대와 내 유년 시절과는 약간 차이가 있어 바로 내 시절 인연들을 떠올리기는 못했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의 마음을 헤아리며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여러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p.s.) 책 정렬이라고 해야 하나? 띄어쓰기가 마음대로 되어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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