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독서 에세이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독서 리뷰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할지 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억과 생각은 찰나에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인간은 유일하게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회고하고 앞으로를 준비하는 동물이라고 하던데, 그 과정에는 분명 기록이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기록으로 중요한 건 더 중요해지고 덜 중요한 건 서서히 잊힐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매 순간 감명 깊은 것을 정리하고 하루를 문장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이 삶을 점차 완전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러한 믿음을 지지해 주는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었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나는 김신자 작가를 정말 좋아한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보면서 나도 저런 멋진 쿨한 언니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이번에 ‘기록’에 대한 글까지 영접하게 되니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있어 보이는 척 고상한 척하지 않고 <기록 계획 부자>를 자처하며 자주 실패하는 기록의 나날들을 제안하는 모습이 너무 공감 가고 솔깃했다. 똑같은 시행착오의 아이콘으로서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순간을 붙잡아두는 모든 시도를 기록이라 여기며 하루, 루틴, 영감, 사랑을 남기는 법에 대해 썼다. 하루를 끝마친 나를 내버려 두지 않고 살피는 기록은 스스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되었다. 흘러가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을 기록하는 역으로 내가 얼마나 충만한 삶을 사는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기록이 반복되면 현재에 충실해진다
일기란 하루치는 시시하지만 1년이 되면 귀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한자리에 쌓여온 시간에 감탄하는 동시에 그 시간을 남겨둔 한 사람의 성실함에 감탄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기록을 쌓아가면 내게 소중한 것들을 소중히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묘한 뿌듯함이 생겨난다. 마침내 내가 보낸, 앞으로 보낼 시간들도 비로소 아끼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기록은 <내 삶이 꽤 괜찮음>을 편집하는 일인 동시에, <앞으로의 삶도 더 살아볼 만할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고 믿는다. 조금은 낙관적일지도 모르지만, 기록이 반복되면 현재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나는 태생이 전투적인지라, 내게 '기록'은 지난날을 회고하고, 다음 날 더 나은 선택을 고르고, 결과의 성취를 느끼며 '내 인생이 허투루 흘러가지만은 않는구나'하며 스스로를 고취하는 도구였다. 이것도 나름 의미는 있겠지만, 책을 읽고 나니 범위를 넓혀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관계 같은 주제 말고 맛있었던 음식이나 평소에 나를 웃게 했던 여러 구성 요소들을 기록하면 좋겠다? 인생이 꼭 비장한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을 텐데 너무 힘을 줬던 건 아닐까. 하는. 주제가 무엇이든 성실히 기록하고 현재에 충실해지는 건 어느 방향으로든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를 돌보는 기록법
무릎을 탁 쳤던 파트는 <오늘 내 마음을 스친 것들 기록하기>였다. '스스로를 제일 정성을 다해 돌보아야 한다'라는 말은 지겹도록 들어왔지만, 그게 잠시 스쳤던 날카로운 바람도 그렇다는 줄은 몰랐으니까. 타인의 푹 찌르는 말에 발끈해 받아치면 그래도 무승부는 되는 줄 알았으니까 말이다. 그 사이 가만히 내 마음에 고이기 시작한 어떠한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기록은 내가 나에게 귀 기울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낮 동안 적당한 곳에 숨겨두었던 마음을 그제야 풀어내는 일인 것이다. 적다 보면, 실없는 웃음으로 넘어가려 한순간이나 대충 에두르던 감정 속에 생각보다 많은 것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음의 일은 오로지 시간을 내어 써 내려갈 때 흘러나오기에 그럴 것이다. 기분 모를 찝찝함과 타인에 대한 불쾌 함들이 조금씩 선명해질 수 있다. 미움을 선명하게 하여 남에게 뱉으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후의 마음가짐과 선택은 또 다른 영역의 일이겠지만, 하루에 잠깐 스쳤던 순간을 잡아채 헤아리면 이유 없이 응어리졌던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다.
(+) 나 같은 경우 귀 기울여 상황 파악을 끝내면, 내 편을 찾아가 같이 욕 해달라며 이야기한다. 스트레스 해소, 해결법은 각자 다르겠지만 내 편에게 전할 정확한 포인트를 짚을 수 있어서도 기록은 내게 유익하다 ㅋ_ㅋ
흘러가기 전에 잡아야 할 여러 순간들
책을 읽는 내내 김신지 작가에게 감사했다. 앞으로를 위해 기록해야 할 여러 모먼트들을 아낌없이 공유해 주었기 때문이다. 월말 결산, 하루의 좋은 순간 줍기, 언젠가 그리워질 공간과 사람 기록하기, 목소리와 손글씨 수집, 웃었던 농담, 칭찬 기록하기 등등. 읽는 내내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이거 이거 이거는 나도 꼭 해봐야겠다.
둘째, 많은가..? 매일 기록하기 너무 빡셀 것 같은데?
셋째, 그래도 쓸 생각하니 기대된다! 내 하루도 괜찮은 거 같은데?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작가의 고백이 있다. 본인에게는 이미 꾸준한 기록에 실패한 일기장이 많다고. 하루의 기록이 아닌 나약함의 기록 같아 피하고 싶은 일기장이 많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것도 소중한 기록이었다고 말하며, 부디 기록은 숙제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에 죄책감을 가지지도 말고, 나의 즐거움을 위해 시작하라고.
작가의 따뜻한 배려에 힘입어, 이번 여행 때는 A4로 포켓북을 만들어 여행을 기록했다. 4월의 어워드도 했고, 2주 정도 일기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기록이 성실히 이행된다는 건 내 바람에도 없지만(안된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그래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오늘도 기록하는 날을 응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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