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싸움
방금까지 짧은 통화를 끝냈다. 사실 싸울 이유는 크게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이 서로 상했던 것 같다. 전화 속에서 그때의 감정을 설명하며 '가끔 그 말을 할 타이밍을 놓칠때면 다시 잘 말을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내게 했다. 저번에도 들은 이유기도 하지만 오늘 내가 서운했던 이유는 쿵하면 짝하고 알아맞추지 못해서가 아니라,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는 당신의 답장때문도 아니었고, 속상해 하는 내 감정을 읽고도 모른척 하는 그 모습 때문이었다. 요새는 점점 이렇게 내 감정을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아, 사실 기분이 좀 울적하다.
나는 비교적 사랑의 감정에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토라져 잠수타면서 내 기분을 맞추라고 하지도 않고, 꽃을 받고 싶으면 꽃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사실 오늘 메세지를 보내면서도 '사랑해라는 답장을 받고 싶어서 보냈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모든걸 말도 안하고 알아주길 바랄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의도한 게 아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기분이 난 늘 드러나고, 그런 부분은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것도 난 너무 잘 안다. 난 적어도 복잡하게 감정놀이를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해서 늘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드러나는 기분조차도 알아주지 않을 땐 기분이 이상하다. 난 당신에게 뭘 바랄 수 없는건가. 하고. 물론 당신도 충분히 과정에서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할 수 있지만, 어떻게 반응해야는지 몰라 갑갑해할 수도 있지만, 마음 아파하는 나를 그대로 두고 가버리는건 그 동안의 내가 당신에게 전달했던 애정들이 몽땅 사라져버리는 느낌이다.
당신은 내게 화해, 또는 분위기를 녹이기 위하여 한 말이었겠지만 나에겐 더 큰 상실감을 준 말이 있다. '상자 안에 적은 시를 보니까, 얘가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데 내가 그거 하나 못해줬나 싶었다'는 말. 물론 내가 먼저 좋아한 것도 사실이었고, 일년이 지나 감정 표현을 더 적극적으로 한 것도 나였고, 많은 애정표현을 한 것도 나였다. 그리고 사귀게 되었을 때도 당신은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나'하고 얘기했었다. 씁쓸했지만 연애 초반이고 내가 늘 좋다고 말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신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나를 이렇게나 좋아해주는 사람'이었던 거다. 당신의 그 말은 '날 이렇게 좋아해주는 사람한테 예의가 아니지'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 감정을 알면서도 돌아섰던 당신이 미웠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 내 형편이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이 연애의 지속은 내가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니는 모른다, 하며 날 사랑한다 이야기했지만 내가 그 시를 적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동안 더 많이 표현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이렇게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걸 알지만) 내가 그렇게 사랑해.사랑해 하고 애원하고 전해야만 사랑을 할 수 있을정도로 난 그렇게 별로인 사람은 아닌데, 내 사랑은 더이상 표현을 하지 못할때까지 계속 사랑을 전하겠지만, 여전히 사랑해주는 사람으로 남는건, 생각을 좀 해봐야 겠다.
3년전엔 연애를 하고 또 다투었을 때, 우리집 고양이를 보며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내가 가진 사랑을 표현하고,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 내 방을 정리하다 고양이랑 눈이 마주쳤다. 문득 이전의 생각들이 스쳐지나갔고, 난 다시 한번 나에게 물었다. 지금도 난 고양이가 되고 싶나.
근데 아니었다. 고양이 같은 사랑을 하면 싸우지도 않고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서로간의 더 깊은 것을 나누지 못할테니까. 오늘 했던 말이 너무 밉고 날 밑바닥까지 내리치는 것 같았지만 그 사람과는 좀 더 깊은 내면까지 공유하고 싶고 그 사람에게는 짠내나는 내 모습까지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하나가 더 생각났는데, 내가 부르는 연애 암흑기(연애는 하지만 철저히 내 입장에 계산적으로 행동했던, 상대방에게 미안했던 날) 동안에는 이렇게 감정 소비를 한다고 판단이 되면 최대한 빨리 정리를 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사람때문에 이렇게 감정 소모를 하는게 낭비라고 느꼈다. 이 암흑기를 청산해준 것도 지금의 당신이지만, 당신하고 오늘처럼 다투었을 땐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그런 생각이 드는게 비정상이지만) 너무 속상하고 밉지만, 싸우는 건 싸우는 것일 뿐, 헤어짐과는 전혀 다른 문제. 라는 인식이 다시 생겼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렇게 좋아하는 감정은 확실하면서도 당신의 행동들이 날 아프게 할 때, 내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 이런 내 감정을 조금 더 줄이고 당신에게 바라는 것을 줄이면 될까.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럼 당신에게 내가 '사랑해주는 사람'인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인지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당신 본인이 더. 먼저 전화오고 메세지와서 어색하게 말거는 당신을 보면, 고의가 아니었단 것도 지금의 상황이 불편하단 것도 충분히 알 것 같은데, 그리고 여전히 나도 당신을 충분히 좋아하는데, 사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이 일도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가벼운 일로 남을 수 있겠지만, 사랑은 그 당시가 제일 엄중하고 중요한 일이니까.
혹시나 당신이 이 글을 본다면 경고할게. 난 사랑만 받아도 모자란 근사한 사람이고, 앞으로는 오늘 같지 않을거야. 오늘 같은 카카오톡부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