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2월엔 <졸업>이라는 대사가 있었다. 졸업,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내게 설렘이었다. 아마 입학하고 늘 어딘가 소속되어있던 상황에 조금 지쳐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다른 일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이젠 마음놓고 할 수 있겠구나! 또는 자유를 가지고 이제 내 쪼대로 할거다! 하는 생각이었달까. 이미 다른 일들은 거의 정리가 되었었고, 지금도 충분히 자유를 만끽하고 있음에도 졸업이라는 의식을 거쳐 진짜 백수가 되고 싶었다. 想作什么,就能作什么。 그리고 이제 졸업한 언니들의 반열에 나도 들어서는거다. 어/른/들/의/세/계
어른이 된다는 건 꼭 '졸업을 한다'라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다만 졸업을 함으로써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를 한 이유는 더 이상 모두와 함께 고민하고, 실험하던 시간을 계속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물론 졸업을 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때의 시작은 대학생때 보다 더 간절할 수도, 더 깊은 몰입이 가능할 수도 있다. 공부든 경험이든- 시작은 사무엘 울만의 시처럼 그 사람을 늘 새로운 청춘으로 만들어 준다. 다만 내가 생각할 때 어린 대학생이 넘쳐나는 시간을 무기로 뭐든 해보는 담력과 여유같은 것들이, 지금은 꽤 쉽지 않다는 거였다. 또 함께 모였던 공동체도, 구성원도 아주 작게 줄어든다. 나 역시 새로운 강점으로 중국어를 새로 공부하고 있지만, 지금의 내가 동물보호센터를 보며 나비와 덕구를 만들거나 시키지도 않는 피피티를 만드느라 날을 새긴 힘들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런 생각을 함께 공유 할 친구들도 많지 않다. 생각을 실행으로 만들어 줄 팀빌더도, 조력자도 없다. 그런의미에서 졸업은 내게 4년동안의 도전과, 성취, 사랑을 안겨준 <소녀시대와의 작별>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소녀를 지나 어른 세계로 가는 그 중간 시간이 아닐까, 지금의 나는.
내 소녀시대는 특별했다. 물론 여자보다 더 많은 남학생들과 시간을 보내 소녀시대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어쨌든 내 소녀시대는 공동체와 사랑, 도전이 넘쳐나는 시간이었다. 전공도 성격도 너무 다른 유토피아 4기가 모였던 날들, 각자 가진게 없어서 몸으로 때우는 봉사활동을 했던 날들, '모닝케어'라는 이름으로 생활패턴을 바꾸자며 아둥바둥 일어나 8시까지 학교에 갔던 날들, 첫 북클럽, 남해로의 교육봉사, 그 속에서 받은 어른신과 아이들과의 사랑, 사내연애 금지를 외친 덕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귈 수 있었고, 평생의 가장 존경하는 연사와- 언니들과- 친구들을 얻었고, 날 정말 기쁜 마음으로 맞아주는 동생들이 생겼고, 디자인이라는 강점을 찾게 해주고 개발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내 사람들은 실수연발이던 내게 기꺼이 기회를 주었었고, 공감과 경청- 인정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주었고, 독서라는 인생에서 즐길 최고의 취미를 발견할 수 있었고, 술 마시고 뱉는 험담이 아닌 커피를 마시며 진심을 나누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내 생각의 좌표를 가지게 해주었던 첫 시도들의 날이었고, 많은 사람과 애정덕에 점점 내가 사랑스러워짐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쓰다보니 교내 학생사회공헌팀-청년같이가 내 대학생활의 전부인 것 같다. 아마 교회 공동체가 이런 느낌이겠지라고 늘 추측해본다. 내 소녀시대는 사람들과 함께 일 때 더 빛이 났다.
我发了个短信:可以的话,请给我一朵花来祝贺我的毕业!可以吗?
그럼에도 꽃을 하나도 받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졸업식 당일 친한 남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꽃 좀 달라고. 아니 뭐 졸업식은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축하해주는거니까- (막내로서 사랑을 받았던 나로서는 조금 억울했다.) 같이 졸업하는 친구는 졸업식에 대부분 오지 않거나 일정이 애매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빛났다고 했던 대학생활인데, 막상 졸업식은 혼자여서 좀 씁쓸했다. 마음속으론 절대 그렇지 않다고 되뇌긴 했지만. 잠시 청년같이 사무실에 들렀더니 '행사에 참여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야 한다며- 귀가 얇은 난 그렇게 계속 사무실에 앉아있게 되었다. 그러다 은진언니가 나가서 졸업식 좀 둘러보러 가자고 했다. 뭐 다행히도 꽃도 많이 받았고, 같이 유토피아를 시작했던 08,09 오빠들도 만나 함께 사진도 찍었다. 동생들도 나랑 같이 따라다녀 주었고 동갑내기 친구들도 만나 점심 시간 전까지 계속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고, 웃고, 이야기했다. 아- 사업을 하는 오빠가 졸업식에 와줘 점심도 사줬다. 네번째임에도 졸업에 짜장면은 처음이었지만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배부르게 먹었다. 그런데 현금이 없대서 결국 내가 전부 결제했다. 응?
오후엔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차 한잔을 했다. 작년에 서둘러 졸업을 하고 아산서원을 갔던 친구의 졸업은, 이를 하나의 점으로 삼고 그 점에서 다른 점으로 달려가는 과정이었다. 공식 백수 2명은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도 했고, 가고 싶은 회사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고, 인생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시간 4시 반, 덜 풀린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헤어졌다. 부산으로 가는 1127버스 안, 이제 공식적인 대학생활은 끝났다. 그리고 타고 갔던 1127번 버스도 당분간은 타지 않을 것 같았다. 쌓인 꽃더미와 친구가 준 졸업선물, 졸업식이 끝난 후 조용한 4시의 울산대학교 교정을 보며, 내 대학생활이- 내 소녀시대가 진짜 끝났음을 실감했다. 我刚才毕业了!
한달이 지났다. 보름인가? 지금 나는 중국어 회화 공부를 하고있고 3월 말에 있을 소비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취업을 할 생각은 없지만 자소서는 계속 써보며 연습하고 있다. 이미 한 곳이 떨어졌다. 아마 앞으로도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이 생활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하루들이 지속될 것 같다. 소녀시대의 활기와 에너지는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빨강머리 앤>에서도 그랬단 거다. 길가의 나무를 귀신으로 만들어 공포에 떨었던 소녀- 이야기 클럽을 만들어 떠들어댔던 앤도 이제 더 이상 이상한 생각을, 장난을 치지 않는다. 단지 더 깊은 눈매와 허공을 보는 일이 많아졌을 뿐. 지금의 나는 분명 내 소녀시대로 만들어졌다는, 명백한 사실의 결과물이다. 그 시간들은 내게 너무 소중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갔기 때문에 그것들이 더 소중해졌다는 것을 오늘에야 다시 느꼈기에, 오늘 기록을 남겨두려 한다. 아름다운 기억을 밑거름 삼아 더 사랑스럽고 인간다운 내가 되길. always been, always w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