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로젝트 단위 서브 프로그램이 많은 이유
맛있는 녀석들의 댄스뚱과 운동뚱
신서유기의 강식당, 이식당, 마포 멋쟁이는 전략적인 브랜딩 프로그램이다
모든 방송을 꿰고 있지는 않지만, 메인 프로의 구성원을 위한 단독 프로젝트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정규 편성보다는 대부분 클립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요) 최근에는 맛있는 녀석들의 운동뚱과 댄스뚱을 자주 보고 있는데요. 리모콘을 들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도 있고, 조회수도 잘 나오고, 팬들이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굳이 일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이런 서브 콘텐츠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숨겨진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요. 그리고 나름 고민을 하며 서브 프로그램들은 메인 프로를 지키기 위한 철저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0년 전 무한도전과 1박2일의 리스크를 바라봤던 이들의 새로운 먹거리 방식이라는 것을요.
5-1=0의 함정
새로운 먹거리는 5-1=0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제가 어릴 때 동방신기 팬카페에서 봤던 메모인데 대충 '다섯 명 중 한 명이라도 빠지면 동방신기가 아니야!'라는 뜻입니다. 지난 10년 간, 이 논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무한도전이 있는데요. 당시 우리는 6명이 각각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이들의 황금밸런스가 유지되어야만 무한도전이라는 의식이 강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새로운 구성원들은 높은 기준에 맞춰 매주 시험대에 오르곤 했죠. 얼마나 웃겼는지, 궁합은 어땠는지, 불편한 태도는 없었는지요. 이렇듯 전체일 때 하나인 이 구조는 다른 프로그램보다 더 빛나고 주목을 받았습니다. 다른 메인 프로그램들도 이들을 따라 구성원간 합을 중요시 여기는 형태로 콘텐츠를 만들었죠. (토크쇼 성격의 라디오스타나 관찰 프로그램인 나혼자산다 등이 있겠네요) 다만 5-1=0은 큰 함정이 있었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이 방식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했을 것 같습니다.
5-1=0은 일종의 역할극입니다. 처음에는 각자의 진짜 성격에 맞춰 바보, 응석받이, 질투의 화신 역할을 하게 되고, 이후 몇몇 조정을 거쳐 구성원들의 역할과 성격들이 딱 맞춘 퍼즐처럼 고정됩니다. (먹히겠다는 컨셉으로 서서히 안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조의 함정은 하나임을 강조하는 이 방식이 강해지고 관심을 받을수록, 모두가 정해진 패턴의 역할극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흐르면 프로그램에도 당연히 변화가 와야 하겠죠. 그러나 구성원 간의 합이 호평을 받을수록 프로그램에서 출연진 교체나 하차는 큰 이슈가 되고, 운영 측면에서도 개편이나 새로운 시너지를 시도하는데도 제약이 생겼습니다.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출연자들은 어떨까요? 개인의 가치가 프로그램의 일부 역할로 축소된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이 뜨고 인기가 많아져도 대중들은 개인이 아닌 'OO프로그램에서 OO역할을 하는 누구'를 좋아할 뿐인거죠. 이 부분에서 누군가는 부담으로 누군가는 갈증으로 느꼈을테고요. 게다가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에 변화라도 생기면 대중들도 불만을 토로합니다. 대중들이 예상하고 기대하는 '오리지널'의 기준이 명확하게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엄청난 위험 요소는 아닙니다만, 이런 함정들을 감수하면서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것 같습니다.
어벤저스를 만드는 서브 프로그램
시대의 변화에도 맞고 앞서 말한 문제도 해결할 수도 있는 대안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로 구성원들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서브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인데요. 저는 이를 5-1=0 문제에도 흔들리지 않는 어벤저스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물론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8할이니, 해답으로 등장했다는 오해가 없으시면 좋겠습니다. 여튼 구성원과의 합과 시너지는 메인 프로그램에서 만들고, 동시에 맞춤화 된 서브 프로젝트를 통해 특정 역할보다 출연자 자체의 브랜딩을 견고히 하는 방식인데요. 예컨대 '병풍' 컨셉의 누군가가 있다면, 메인 프로그램에서는 다른 출연자들에게 밀려 병풍이 되더라도 서브 프로그램에서는 병풍 외에 보여줄 수 있는 본인만의 매력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개인의 다양한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노출되면 사람들도 메인 프로에서도 그에게 병풍 역할만을 기대하지도 않을겁니다. 고개를 갸웃 한다면 상대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맛있는 녀석들의 김민경'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비교했을 때, 예전에는 '사장님~'하고 부르는 컨셉이 유일했다면 운동뚱으로 자리매김한 지금의 김민경은 왠지 모르게 훨씬 입체적이고 적극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나긋나긋한 사장님 호출 역할이 재밌는 김민경'보다 '김민경이라는 사람 그 자체'로 바라보게도 되었는데요. 제가 말하는 포인트는 여기입니다. 이전의 구성원들이 퍼즐의 한 조각으로 역할했다면, 지금은 강한 브랜딩을 통해 조각 역할은 물론- 조각 자체에도 의미를 만들어 퍼즐의 품질과 완성도, 재미를 더 높여주는 확장된 역할을 수행한다는 걸요.
개인 브랜딩이 강화되면 앞으로 메인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자들의 활용도가 높아질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자막이든 특집이든 새로운 특징들은 따로 방송 시간을 할애해야 했으니까요.(쉽지 않았죠) 지금은 서브 콘텐츠로 팬들이 아는 모습을 언급만 하면 됩니다. 오히려 메인 프로그램만 보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서브 콘텐츠를 찾아보기도 하죠. '쟤는 병풍 역할인데 왜 저러지?'가 아니라 '병풍 역할이긴 한데 쟤가 이거에 예민해서 그러는거임. 예전에 OO 프로그램 할 때도...'라는 여지가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열린 시선들은 앞으로 프로그램에서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해줄 것 같아 기대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마블 시리즈하면 모든 히어로들이 힘을 모아 악을 저지하는 어벤저스 스토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화려하고, 예상 못한 케미나 충돌하는 구성원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일겁니다. 다만 각자의 역할이 있고 합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어벤저스가 이런 인기를 얻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처음부터 어벤저스로 등장하여 정해진 역할에 맞춰서만 싸웠다면 헐크나 호크아이, 앤트맨까지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었을지요. 히어로 고유의 이야기로 브랜드를 키워왔기 때문에 모든 캐릭터가 어벤저스 안에서도 입체적인 캐릭터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한 서브 콘텐츠를 어벤저스를 만드는 과정이라 설명한 이유입니다.
뉴노멀
어쩌면 트렌드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앞으로 이런 서브 콘텐츠들이 필수가 될 거라는 점이겠죠. 말 그대로 뉴노멀이 되어 '서브 콘텐츠 각이 나오는 가'도 출연자를 섭외하는 기준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축의 전환의 화두와 함께 작년부터 슬슬 올라오던 개인의 브랜딩화, 이미 방송계는 일찍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최근에야 알게 되어 이렇게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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