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답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을 만날 것
만나는 순간, ‘이 사람은 내가 꼭 꼬셔서 결혼까지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사람과, 드디어 결혼한다.
이 사람 꽤 괜찮다.
라고 생각한 사람과 4년 간의 교제 끝에 함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다. 처음에 이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꽤 단순했는데- 어중간한 허세도 없고, 여자를 함부로 생각하는 타입도 아니었고, 예의가 바르고, 자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이성적으로 호감을 느낀 사람 중에 이렇게 바르게 자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혼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묘한 성취감을 느끼곤 한다. 5252 내가 쟁취했다구! 물론 결혼까지 생각하게 된 건 더 중요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한 ‘함께 답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 이다.
작업실에서 ‘동글’이라고 표현하는 이 사람은 나랑 취향과 생각하는 방식, 실제로 행동하는 모습이 정말 다른 사람이다. 나는 개인주의 적이고, 서로가 합의 된 연대를 추구하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생각하면 (왠만하면) 실행하는 편이다. 반대로 동글이는 전체와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보고자하고, 타인에게 주는 인상을 중요시하며 100%의 확신과 정보가 없다면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는 편이다. 부모님이 자식 이름으로 들어놓은 보험에 대해 동글이는 ‘언젠가 내가 받아와야 할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부모님이 원해서 든 보험(나는 원하지 않았던 보험)인데 내가 왜 받아와?’라고 생각한다. 혼인 신고에 대해서 ‘사회 전체의 규칙’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우리한테 이득이 없다면 굳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년에 팀 이동을 생각할 때 동글이는 상황을 지켜보며 공식적인 사내 공모를 권유했고, (그러나) 나는 바로 직책자에게 면담을 요청하여 타조직으로 이동했다. 우린 참 다르다. 빨래 개는 방식부터 설거지 할 때의 습관, 의사결정을 하는 기준의 대부분이.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우린 정말 다른 별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왔다.
동글이의 성격 중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바로 ‘감정을 살피는 침착함’이다. 우리도 여느 커플들처럼 종종 다투곤 하는데, 서로의 감정이 격해져 있을 때 동글이는 본인의 감정보다 내 감정을 먼저 주의깊게 듣는 편이다. 타고난 건 아니다, 본인이 말하기에는 ‘나도 화가 나지만, 네 감정의 크기가 나보다 큰 것 같아서 아직 여유가 있는 내가 듣는 것 뿐’이라고 한다. 동글이의 배려로 우리는 싸울 때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내가 먼저 서운한 것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 동글이의 사정을 듣는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알게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러한 배려에는 ‘다음에 내가 더 참지 못할 때, 그 때는 너가 먼저 나를 살펴주길 바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매번 귀를 내어주는 사람은 동글이 인 것 같다. ) 우리의 냉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다만 큰 의사결정을 할 때는 이러한 침착함도 먹히지 않을 때가 있는데, ‘결혼 준비’ 나 ‘출산 또는 육아’ ‘돈을 버는 일’이 그랬다. 아무리 서로의 의견을 들어도 내가 가진 생각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양보의 문제를 넘어서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출산과 육아, 경력 단절’에 대해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글이와 대척점에 서서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어머니로서 성숙한 인생의 한 과정을 나아가는 것’, ‘자식이 주는 고차원적인 행복’은 내가 가진 생각을 바꿀만한 조건들이 아니었다. 불확실하고 정성적인 행복보다는 근 10년 간 나와 비슷한 조건의 출산자들이 보여준 인생 통계가 더 피부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자, 이렇게 서로의 이해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이 비단 한둘일까? 난 이번에도 동글이의 배려를 바라야 하는걸까?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 사람을 선택해서 다행이다’라고 느낀 점이 바로 이런 문제를 대하는 동글이의 방식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앞서 말한 주제에 대한 답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해왔던 것 처럼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인다. 내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꼬투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여 본다. 그리고 서로를 믿을뿐이다. 이게 무슨 말이야면, 지금 당장은 서로가 답을 내지 못하더라도 함께 지내며 너와 내가 동의하는 답을 찾을 것이니 그 여지를 남겨두자는 거다. 이건 동글이가 내게 제안한 방식이다. 나는 처음 이 방식이 덮어두고 일을 크게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바뀌지 않을 건데 나중에 이야기한들 달라지냐는 거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동글이가 말했다. ‘난 우리가 그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서로가 이해하는 답을 찾을거라고 생각해. 난 우리를 확신해.’ 도대체 이런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동글이의 단호한 눈빛에 벙-쪄버렸다. 나도 나를 못믿는데 동글이는 우리를 믿고 있었다. 그 확신 안에는 언제나 서로가 서로의 말을 귀 기울이며 이야기하는 모습과, 우리가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이 있었다. 의사 결정에 자신의 고집이 아닌 둘의 모습을 그리는 동글이를 보며, 내 의견만 고집하는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나보다 조금 어른스럽고- 우리 둘의 모습을 믿는 그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 동글이는 얼마 뒤 서로를 믿고 함께 답을 찾아 나가자는 말로 내게 프로포즈 했다.
요즘 동글이는 어떻냐면, (계속 출산 이야기를 주제로 하자면-) 내 의사가 가장 중요하며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여전히 서로가 합의하는 답을 찾을 거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지금 나랑 지내는 것 자체로도 너무 설레고 행복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지금도 ‘나롱 밥 챙겨 먹어야지’하면서 빙글빙글 웃는 동글이를 본다. 동글이의 말 처럼 힘들고 답답하더라도 우리만의 답을 찾아내는 생활이 지속되었음 좋겠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동행임을 아는 두 사람은 잡은 손을 놓지 않되 함부로 잡아끌지 않을 것이며
서로의 두 눈을 고요히 바라보아 말하지 않아도 같은 쪽으로 걸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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