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공지 누가 썼냐?
게이머 사이에는 예로부터 2개의 전설이 내려온다. 하나는 게임 출시한다고 광고는 다 해놓고 막상 들어가면 서버가 터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규모 업데이트라며 기대하라 해놓고 하루종일 임시 점검을 때린다는 거다. ‘서버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또는 ’82ST5(대충 숫자) error’ 같은 팝업창을 보면 ‘역시 그렇지’하면서 오늘도 전설이 맞았음을 깨닫는다. 게시판만 봐도 다들 안된다고 난리가 났는데 이놈의 게임 회사 직원들은 왜 재깍재깍 공지를 올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기다리다 ‘공지 떴다’ 말을 듣고 보면 ‘현재 확인 중입니다’는 짧은 내용만 올라와있다. 도대체 게임을 운영할 생각이나 있는 걸까? “이런 공지는 도대체 누가 쓰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게 나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바로 여러분이 우려하던 ‘그 공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어떤 현상이 확인이 되었고, 원인을 파악하게 되면 후속 공지를 할 예정임을 알리는 내용을 준비한다.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한 번에, 그것도 빠르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손에 꼽는다. 심지어 그 ‘확인 중입니다’라는 공지를 준비할 때조차 심장이 콩닥거렸다.
의사소통의 최전선
공지 하나가 뭐길래 그리 벌벌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공지가 ‘게임과 유저가 만나는 가장 흔하면서 밀접한 의사소통의 연결점’이라 생각하고 있다. 2018년 처음 게임 업무를 시작하던 때는 게임사가 아주 소극적으로만 소통하던 시기였다. 최말단이었던 나는 당연하게도 의사 결정보다는 대응하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간 때였는데 엄청 깨지고 고생했다. 단어 하나에 활활 타고 시점에 따라 화재가 진압되는 걸 보면서, 단순 노동 허드렛일이라 생각했던 커뮤니티 관리가 곧 의사소통의 최전선에 있다고 굳게 믿게 된 것이다. 그래서 흔한 공지지만 바로 그 흔함때문에 단어 선택과 표현에 신경 썼고, 몇 줄 안 되는 문장이지만 그 짧은 내용으로 다른 이슈가 발생하지 않도록, 또는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왔다. 사업PM 합류 전에 운영 부서에서 배운 경험이지만, 의사 소통 최전선에 있었던 경험은 게임 서비스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줬다.
팬덤을 가진 게임 디렉터가 나온 지금 시대는 소통의 범위가 훨씬 더 광범위하다. 그래서 예전 대비 공지 중요도가 높진 않을 수 있으나, 여전히 공지 하나 잘못쓰면 나락행 열차를 타게 된다. 공지는 서비스 상황을 투명하게 안내하고, 신뢰감을 주는 측면에서, 공지는 여전히 역할이 있는 것 같다. 이런걸 보면, 신뢰의 축은 특별한 한 방이 아니라, 부지런하고 일상적인 순간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게임 플레이 중 답답하고 불만족스러움 경험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도록, 또 가급적 늦지 않도록, 일방향이 아닌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도록하는 것이 의사소통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뭐 가끔 공지로 인한 사건사고가 일어나긴 하지만, 본디 사고란 일반적이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뉴스가 되는거니, 업계에 많은 동료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공지를 준비하는 과정
사실 이런 것보다는 그래서 왜 공지를 빨리빨리 안 올리냐가 더 궁금할 수도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중간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정해져 있는 긴 프로세스를 타야 한다는 건 아니고, 상황 판단과 문제 해결을 위해 검증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공지는 단순히 글을 쓰고 버튼을 누르는 일이 아니라, 라이브 이슈에 대응하는 중요한 첫 단계라 할 수 있다. 육하원칙에 따라 문제를 파악해야 하고, 문제 인식에 따라 공지 시점과 안내 범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게임 내 아이템 교환 문제가 생겼다 가정해 보자. 교환은 아이템 이름에 ‘교환 가능’ 문구가 있어야만 했는데, 어느 게임 스트리머가 문구가 없는 A아이템도 교환 가능한 걸 발견했다고 방송을 했다. 유저들은 방송을 보고 모두 이 이슈를 알았다. 이 동향을 확인한 담당자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유저들 다 아는 사실을 왜 공지를 안올리고 있을까, 치킨 뜯고 있나?
스트리머가 알려준 내용이 ‘증상’이라면 증상이 일어난 ‘원인’이 있을 테다. 이런 경우 우리는 먼저 원인을 찾는데 집중한다. 원래 교환 가능템인데 이름이 잘못된 것인지, 설정은 맞는데 아이템 id가 잘못 들어갔는지, A 아이템 외 동일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없는지, 모두에게 일어나는지 간헐적인 오류인지, 앞서 말한 것들이 모두 땡이라면 영상 속 이슈가 일어날만한 상황을 역으로 재현해서 원인을 찾는다. 파티 상태에서만 가능했다던지, 특정 위치에서만 가능했다던지 등 원인 확인을 1순위로 한다. 원인을 찾아내야만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저들도 ‘A 아이템 문제가 있었는데 해결했다’보다는 ‘특정 아이템이 거래 가능템인데 게임에서 보여지는 이름이 잘못된 문제가 있었고, 다음 점검 때 개선될 예정이고, 해당 아이템 외 동일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템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라는 내용을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건 당연하다. 온라인 게임의 특징이기도 한데 만약 문제가 게임의 경제나 밸런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 큰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공지와 동시에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공정한 게임 환경을 유지하고 어뷰징을 방지하기 위해 즉각적인 처리해야 할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원인까지 정확히 판단해 2차 문제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서비스를 다루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유저가 알아차리는 첫 연결 지점이 공지인 셈이다. 늦어도 봐달라는 뜻은 아니다. 공지가 신속 정확하고 문제 해결도 잘 준비되어야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나와 내 동료들은 돈을 받고 게임 서비스를 다루는 전문가들이니까. 그저 게임 운영에 영향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고, 적어도 나는 이 일에 자부심이 있다는 것 뿐이다.
과거 공지는 게임사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 일방향적으로 전달되었다면, 현재는 시장 내 정보가 편향되지 않도록 정보의 균형을 맞추고, 유저의 의견에 답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이 많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지금은 공지를 준비하는 일을 하지 않지만, 나는 아직도 공지가 게임사와 유저를 잇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나 현재나, 게임 서비스의 라이브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임 담당자들이 라이브 이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책임감을 공지를 통해 살짝쿵 얘기하고 싶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내가 좀 더 노력해야겠지만, 가능하면 게임사와 유저 모두 서로가 신뢰하는 관계가 길게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서비스를 하며 “이런 공지는 도대체 누가 쓰냐? 개 잘 썼네”라는 말을 들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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