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독서 에세이
임진아 <오늘의 단어> 독서 기록
좋아하는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느긋하게 만드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함께 사는 강아지 '키키', 작가 '진아'의 하루에 약간의 조미료를 얹어 계절의 변화를 기록한 '오늘의 단어'라는 책이다. 너무 즐겁게 봤고, 개인적으로 꼽은 <여름 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면서 읽어볼만한 책 어워드>의 1등 책이기도 하다.
하루를 특집으로 만드는 상상력
작가인 임진아는 따뜻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다. 강아지 키키와 사는 하루를 약간 각색했는데, 책 속에서 키키는 떡볶이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거나 장을 봐오기도 한다. 그리고 진아와 함께 지나가는 계절에 대해, 오늘만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실과 상상 사이의 강아지를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하루를 소중하게 쓸 수 있도록 열심히 관찰하고 신경을 쓰는 모습, 매일 다른 하루임을 실감하는 두 사람의 일상이 인상깊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하루라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당연하게 느끼는 평소들이 있지 않나? 이 책에서는 그런 하루를 놓치지 않고 '오늘의 단어'라는 이름으로 매일을 특집으로 만들어 버린다. 서른이 넘어가고 부터는 '내 하루를 어떻게 채우느냐가' 반찬 고르는 것보다 중요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이 유독 마음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책에서는 좋아하는 순간을 선명히 기록하기 위해 하루의 기쁨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일상적인 소재로 단편 만화 3개와 1개의 에세이를 통해. 그들이 이야기하는 여름의 기억이란 가령 이런 것들이다.
자기 전에 얼려둔 얼음을 꺼내며 시작하는 아침. 그리고 비어버린 얼음 틀에 바로바로 물을 채운다. 얼음이 만들어지자마자 새로 얼리는 나날. 우리는 더운 마음을 미리 식히며 여름을 무사히 보내고 있어. "얼음 얼렸니?"는 여름만의 안부 인사.
밤이 되면 커피 생각이 나요. 책을 보며 마시는 따뜻한 커피요. '지금은 커피의 시간이다'라는 한 마디가 필요할 뿐. 내일이 되면 또 커피를 마실 수 있다니, 매일 이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여름의 커피는 두가지야. 아침에는 시원하고 진하며, 밤에는 따뜻하고 연하지.
어느 계절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과일을 마주할 때 느껴. '드디어 여름이 왔구나' 하고. 좋아하는 과일을 질릴 때까지 먹고 싶지만, 계절은 질릴 시간을 주지 않지. 챙겨야 할 게 참 많은 계절, 그러니까 부지런히 먹어야 해!
비슷한 하루처럼 보이지만 개인마다 겪는 하루가 다르고, 내가 겪은 하루도 매일 다르다. 그래서일까?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나도 비슷한데!' 또는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지 알겠어!'같은 말을 너무 하고 싶었다. 나뿐 아니라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조잘거리고 싶은 자신만의 하루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인다, 나의 평소
나를 위한 느긋한 시간을 위해서는 '평소'를 잘 활용해야는 것 같다.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동기가 생겨난다) 중간중간 멈춰서 지금이 내가 점유한 시간임을 인식하는 일이란 말씀! 평소란 소란이 무대 앞에 나타난 뒤에야 알아차게 되니까 말이다.
키키야 만약 지금이 여행 중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오늘을 '숙소에서만 노는 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설레지않니? 왠지 특별하게 느껴져. 기분 좋은 사치 같다. 특별한 일도 별일도 없는 보통인 날이 오히려 값지니까. 이런 날은 편의점에서 산 컵라면이 맛있게 느껴지지.
오늘은 평소와 다름없는 날입니다. 어제와 전혀 다른 날 같지만 어째 기분은 비슷하거든요. 나의 바탕이 되는 기분을 매일 평평하게 유지하는 일. 평소와 다름없다는 것에 안심한다는 건, 지금이 지속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비슷한 날, 여러분은 평소에 뭐 하시나요?
자꾸만 돌이켜보게 되는 날이 평소인지도 모릅니다. 조금 아프고 불편할 뿐인데 고작 며칠 전의 아무렇지 않은 날이 그립습니다. 오늘이 평소인지도 모르고 무덤덤하게 지내던 지난 내 표정이 부러워집니다. 무언가 신경 쓸 일이 없는 날은 침대 위에 양 발을 시원하게 뻗는 날입니다. 그런 자세로 쉬면서 평범하게 오늘을 보내고 싶습니다.
왜 일본 드라마 중에 정말 잔잔한 에피소드만으로 작품을 끝내는 종류들이 있지 않나? 이 책은 그런 평화로움과 하루의 소중함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나의 평화로운 일상을 가꾸어주는 친구에게 '오늘의 단어'를 선물했다. 에너지가 가득 차있을 때, 방구석 플리를 틀어놓고 한가로운 하루를 보낼 때 읽어보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책장에 꽂아놓고 오래보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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