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삶을 가꿉니다 독서 에세이
소형 작가 <나에게 맞는 삶을 가꿉니다> 독서 기록
정리 수납 전문가로 일해본 작가의 에세이다. 정리 정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근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스스로 일상을 어떻게 정돈해야 되는지에 대한 작가의 개인 루틴과 생각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물건을 냅다 줄이는 미니멀라이프가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자신을 돌보는 (방을 정리하든, 사회 환경을 정리하든) 미니멀라이프가 무엇인 지 어렴풋이 알려준다. 여기에 실전 정리 정돈 팁은 보너스라니? 책은 하나의 주제에 3~4편의 일러스트와 1~2장의 짧은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너무 기대하고 읽으면 실망할 것 같다. 마음을 놓고 편하게 읽어보는 것을 추천
정리는 비우는 게 먼저, 물건도 사람도
정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은근히 일상 정돈에 유용한 관점들을 제시하는 게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 정리 노하우를 보다가 갑자기 급소를 맞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물건을 제자리에 두기'라는 항목이 있다. 스티커를 활용하거나 코스터, 칸막이를 놓아 물건에게 <되돌아갈 자리를 만들어 주라>는 말을 은근히 던진다. '좋은 말이네' 하고 넘기는 순간 작가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활약하고 싶다면 내 자리를 확고하게 만들어 두어야 한다. 나다움을 먼저 만들고 자리를 비워야 그 자리가 대체 불가능한 빈자리가 된다. (중략) 얼마든지 새로운 자아를 찾고 상황에 따라 자신의 캐릭터를 변화시킬 수 있지만 언제든 나다움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큼의 중력은 만들어야겠다. 그 중력이 강할수록 더 멀리 갔다 돌아올 수 있다.
진짜 이런 식으로 훅 들어오는 거 반칙이지 않나? 근데 이미 한 번 맛을 봐서 계속 계속 읽게 된다. 또 있다. 정리 정돈의 기본은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작가는 '필요 없는 물건을 소비하지 않는 삶'을 연결시킨다. 곧 소비를 통해서는 인간의 정체성을 만들 수 없으니, 우리는 물건을 무작정 사기보다 존재를 강화시키는 생산의 루틴을 만들어 나가자고 제안한다. (작가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을 인용했다). 작가는 분명 물건의 정리 정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일상을 정돈하고 싶어지는 걸까? 작가의 이야기에 마음이 혹 한다. 아마 작가가 열심히 자아를 찾아다니며 나름 자신만의 단단한 해결책을 찾아서가 아닐까. 그림 작가인데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두 번째 작가였다
심심하지만 약하지 않는 생활 루틴
사실 정리 정돈 꽤 유용한 방법이 있지만 왠지 해보지는 않을 것 같다. (언젠가 필요하게 되면 그때 다시 도서관에서 빌리지 뭐..) 여튼 그럼에도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작가가 하는 짧은 글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글은 짧은 만큼 심플하다. 물건 정리하듯 일상생활도 사고하는 것 같았다. 어쩜 이리 간결하고 명쾌하며 또 답처럼 느껴지는지 원. 게다가 우리가 일상을 잘 가꾸고 싶어 하면서도 실패하는 그 감정선도 잘 살렸다. 공감이 잘 된다는 뜻, 나중에는 일러스트(청소 팁)은 대충 보고 글(일상 팁)을 중심으로 읽었다. 음, 청소 팁엔 큰 감흥이 없었지만 세스퀴 소다수나 이불 정리에 신문지를 깔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은 이런 거였다. 도대체 이 글을 쓰게 된 청소 팁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안 알려 줄 거다. 직접 보길 추천..! 작가의 말마따나 책 내용을 요약한 글을 보면 '알게 되지만' 책을 읽으면 '마음이 변하게'되니까.
꾹꾹 눌러 왔던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순간도 콘센트 줄에 발이 걸려 충전 중인 핸드폰이 떨어지는 사소한 때가 아닌가. 반면 작은 불편을 줄이고 물 흐르는 듯한 일상이 만들어지면 업무 이외의 시간에 깊이 휴식할 수 있다. 복잡하게 꼬인 전선을 정리하고 까슬거리는 목뒤의 태그를 떼 버린다. 택배 상자가 배송되어 오는 현관 신발장에 칼을 하나 가져다 두고 마스크를 걸어 두는 고리를 붙인다. (중략) 이런 사소한 것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불편한 것이라 개선 요구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그러니 내 편의를 개선해 달라는 내적 요구의 목소리를 듣자. 그 목소리는 공기의 진동이 아닌 마음의 울림이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들을수록 내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개선하고, 개선을 좀 더 창의적으로 하고, 창의적으로 개선했다면 더 미적으로 해 보자. 일상이 작품이 되고 내 취향의 삶이 만들어질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다가 문득 어디로 휩쓸려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 때 듣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멋지지만 멀게만 느껴진다. 나는 그럴 때 노트 구석에 적어 둔 글귀를 본다. 그것은 세상 어떤 지식이나 대단한 강의보다 더 나 다운 것이다. 듣고 배운 것 중에서 내가 선별한 것이니까. 핸드폰으로 찍어 둔 사진도 본다. 그것이 세상의 많고 많은 이미지 속에서 내가 간직하고 싶었던 순간이니까. 내게는 이미 내가 선택한 것이 있다. 수백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속에 내가 줄을 친 몇 구절이 빛나고 있고, 일기장 안에 내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한 나의 하루가 있다. 그 모든 것이 내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나는 언제든지 그것들을 꺼내서 무언가를 만드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정말 든든하지 않은가?
호로록 그림만 읽으면서 끝낼 수도 있는 책이었지만 작가의 이 짧은 글들이 너무 와닿았다. 출판사들도 억지로 300p 만들어서 책 팔지 말고 그냥 보석 같은 글만 팔면 안 되려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짧은 에세이가 맘에 들었다. 나는 매일 이렇게 청소하고 일상을 가꾸는 작가가 대단한데 작가는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한다. 나도 미숙하지만 꾸준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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