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좋은일 독서 에세이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독서 리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날 것이다. 정돈되기 보다는 무질서하고 불공정하고 분열하고 있다 느낀다. 가끔 어쩜 세상이 이렇냐고 질색한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세상이라도, 우리에게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바로 세상과 나 사이 연결고리에 의지해 모두 힘을 낸다는 것일거다. 연결고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정체성을 만들고 기꺼이 마음을 내어준다. 정혜윤 작가에게 연결고리는 곧 책이었다. 『뜻밖의 좋은 일』에는 책을 통해 배운 삶의 기술이 이야기로 담겨있다.
책은 '사는 맛', '자아', '사랑과 우정', '어떻게 살 것인가' 총 4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삶을 기쁨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세상의 이해(직시)와 나라는 정체성을 통해 우리는 단단해질 수 있고,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비로소 완성해낼 수 있다고 작가는 정의내렸다. 관습과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현명함, 스스로에 대한 가치와 원칙, 이 모든 것에 대한 용기를 주는 연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반적인 요약/필사 내용은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는 것을 권합니다
[글과 책/요약 & 필사] - 뜻밖의 좋은 일 요약 필사
나는 살아가는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된다고 믿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이야기에도 귀를 귀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야기를 통해 '내가 어느 이야기 속 일부가 되고 싶은 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침 이 책은 다른 작가의 책 내용이나 작가의 말이 자주 인용되는 편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셈이다. 책에서 소개해주는 이야기와 혜윤 작가의 메시지를 통해 나와 삶을 연결시킬수 있는 고리들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중요한 게 없으면 지킬 것도 없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는 유대인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적 전쟁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던 그녀는, 어느날 한 농부를 만났고 그가 고기를 내어줬다고 했다. 그러나 유대인이었기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고한다. 얘기를 들은 그녀의 손자는 목숨을 구하는게 먼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말했다.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면 지켜야 할 것도 없는 법이란다"라고. 제일 인상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다.
반대로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등장하는 이반 일리치는 남들이 좋아할만한 삶을 살았으나, 죽은 후 자기 삶은 없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무엇이 후회스러운지도 모르는 것이 핵심이다) 지혜롭기보다 관습적이었고, 자기의 삶이 아닌 가진 것을 누리는 삶에 그치는 삶이었다. 부끄럽지만 우리 사회의 절반은 할머니보다는 이반 일리치의 삶을 살고싶어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과연 물질적 쾌락을 누리고, 고통없이 좋은 감정만 느끼는 삶이면 잘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걸까. 지켜야 할 목표와 가치가 없는 것은 그저 연명에 불과하지 않을까. 두 개의 작품을 겹쳐보니 '내가 지켜야 할 가치를 아는 것과, 그 가치를 지켜나가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스스로 생각하는 신념과 원칙을 두는 것과 자기기만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해 질문한다. 자아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 나에게 들어있냐고, 껍데기가 아닌 본질이 있느냐고 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의 선택을 통해 내가 살고 싶은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간 속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순간들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금도 계속 만들어 지는 중이기에 늦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그 공간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꼭 필요하지 않는 것을 차례차례 다 버리고도 네게 남게 되는 것, 너에게 '그것'은 무엇인가?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 네게 있는가?
너 자신이 되어라 : 매사에 너 자신의 뜻과 주장을 관철하라는 말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자신의 운명에 잘 개입하는 법을 알아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중략) 외부로부터 정해주는 척도를 따르는 태도들로부터 자유롭게. 타인의 광증이나 이익을 위해서 희생당할 위험에서 자유롭게.
사소함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원칙과 신념을 가지고 살더라도 우리는 작은 일상에도 자주 흔들리는 미약한 존재다. 그러나 반대로 사소한 작은 기쁨에 삶을 풍요롭게 느끼는 존재기도 하다. 불행하고 어딘가 뒤틀려있는 세상이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한번의 기쁨이라고 소홀히 대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우리가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을 가지고 멀리 가기 위해서는, 일상의 사소한 작은 기쁨에서 행복을 느끼며 삶을 버텨야 한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버티는 게 아니라 사소한 기쁨으로 균형을 잡아가며 멈추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타인의 작은 모습에도 감사함을 느끼고, 작은 고난을 겹겹이 쌓아두지 않고 기꺼이 극복하는 마음으로 삶을 상큼하게 보내는 것. 감사함과 유머를 더한 사소함을 통해 우리는 오래, 멀리 갈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깊고 또 이상할 정도로 얕다. 그런데 우리는 그 얕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뜻밖의 좋은 일』이라는 책 이름은 '사소한'이라는 형용사를 가지고 힘을 내며 살아가자는 뜻으로 정한게 아닐까. 이왕이면 기쁜 것으로. 불행한 것을 추진력으로 삼지 않을 때 우리는 빛이 나니까. 또는 '사소한'이라는 형용사를 가지고 나 자신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삶의 본질은 사소한 사건들에서 더 잘 드러나고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이 특별한 이유는, 어느 평범한 날이 빛나는 날로 바뀌는 것, 진실한 마음으로 사소하게라도 뭔가를 변화시켜서이다.
마음의 밑바닥은 어두웠지만 우리의 명랑함은 억지로 꾸며 만든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늘 뭔가를 배웠다. (중략) 극복된 좌절감, 극복된 두려움, 극복된 우울. 모든 극복된 것들은 삶을 기쁜 마음으로 살게 돕는다.
일상과 영혼에 사랑을 연결하는 삶
타협하지 않는 원칙과 정체성, 이를 일상에서도 단단하게 해줄 사소한 기쁨. 이 모든 과정에는 타인과의 연결이 있다고 말한다. 함께 길을 걸어가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우리 곁에 있으며, 그들과 함께하기에 우리는 힘을 내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손을 잡고, 내가 건 전화를 누군가 받아주고, 여러 이야기를 하다 가끔씩 우리의 사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가끔씩 위로받고, 응원하고, 앞으로 해 나갈 힘을 얻는 것이다. 나 자신은 본보기로 삼을 무언가를 찾으면서, 타인에게 구조 요청을 보내면서 온갖 것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힘을 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믿을 만한 친구와 술 한잔과 믿을 만한 시가 필요하다.
길을 잃지 않는데 중요한 것은 연결이었다. 사랑을 일상과 영혼 둘 다에 연결하는 것. 가장 좋아해서 아름답다고 느낀 일을 앞으로의 나와 연결하는 것. 나를 자기 삶에 들어가도록 허락해준 사람들과 길을 걷고 싶다. 나의 전화를 누군가 받아준다면 좋겠다.
우리가 태어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것이다. 일상은 초조하고 짜증나고 불안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일상 속 어딘가 이렇게 성스러운 순간이 있다. (중략) 인간, 그리고 우리가 관계 맺는 생명체는 유일한 존재이지만 무한한 것을 품을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고 받아들이면서 받아들여지는 존재이다. 이 우주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따뜻함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따뜻함뿐이다.
정혜윤 작가의 글은 단단하지만 무겁다. 그래서 읽다보면 종종 가라앉는다. 마치 무거운 닻이 끝없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동시에 스스로의 무용함에 잠긴 나를 돛으로 끌어 올려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아마 실제로 우리들을 끌어내리는 것은 견디기 힘든 사람과 사건들일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작가는 그 비뚤어진 삶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힘을 내며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삶에 적응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나의 인간성과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 힘을 내며 살아가라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고 나니 정신 승리가 아닌,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 좋은 사람, 좋은 순간들이 인생에 가득하다. 덧없어 보이는 세상을, 우리의 진실된 열망으로 기쁘고 영원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
(+) 인용문도 많고 하나의 글에 여러 주제들이 담겨 있어서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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