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 마음은 그 곳에 두고 가기로
최근 조직에서 일하기 어려워 실장님과 면담을 했다. 여러 이유와 얘기들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팀 이동을 고려해주셨다. 그리고 이번 금요일 다같이 모이는 자리에서 '디아나는 다른 팀에서 일 하기로 되었어'라고 공지했다. 생각보다 반응은 미온적이었는데, A는 메신저로 '???'를 보냈고 B는 미동도 없었다. 이번 변화에는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가는 사람'에 대한 반응은 조금 미덥지근 한 듯 했다.
처음에 조직 이동으로 결정이 났을 때는 신났는데 막상 다가오니 불편한 마음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부럽다고, 누군가는 서운하다 했기 때문이고, 누군가는 용기에 대한 보상이라 축하했고 누군가는 비슷하게 TO가 나면 추천해달라는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본인도 전배를 시켜달라 면담했다고 전해줬기 때문이다. 나처럼 다른 이들도 어려웠던 점이 분명히 있을거였기에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당연히 잘 된 일이고, 갈 사람은 행복하라고 말은 하지만 뭔가 나만 탈출하는 느낌이랄까.. 뭔가 핵폭탄이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이번 이동에는 나로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생겼다. 세상 일은 내가 원하는 걸 모두를 얻을 순 없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줄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미움받을 용기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게 요즘의 내 마음가짐이다. 다만 내가 받을 미움보다는, 상대방의 상처가 신경쓰이는 게 사실이다. 내게 많은 애정을 주고 의지했던 동료에게 미안하면서도 또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 도저히 정리되질 않았다. 다만 내가 생각했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진심으로 내 마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누가 그랬더라, 마음을 전하면 그 마음을 어떻게 할지는 상대방의 몫이라고. 나는 오히려 홀가분해지는 일이니 안절부절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는데,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나의 죄책감을 조금 덜어주는 말 같아서 더 혹했을 지도 모른다.
최근 실원 H가 심리 상담 후기를 알려주면서 '회사에서 있었던 감정은 퇴근할 때 두고 나와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조금 뻔한 말일 수도 있으나 문을 나가는 순간 그 동안의 것들을 두고 나온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바꿔서 생각해 보아요. 저는 이 곳에서 상담 일을 하면서 매일 다른 사람들의 '힘들다'와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루 종일 들어요. 만약 제가 퇴근할 때 이 감정이나 생각을 두고 오지 않으면 저는 매일 힘들다 말 속에 살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퇴근할 때 이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두고 오려고 해요.
순수한 축복보다는 씁쓸한 축하를 받으며, 누군가의 서운함을 받으며 가는 이 상황을 마냥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그래도 결국 이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 필요도 없고 해결할 권한이 없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결론이 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하면 된다.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면담을 했던 거니까.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했던 말인데, 이번 턴엔 특히 사람들로 많이 힘들었다. 그간의 사회 생활로 나의 욱하는 성질만 참고 견디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과정에서 내 스스로가 많이 타버렸다. 분명 적당히 거리를 둘 시점이 있었을텐데, 미련한 인류애주의자 재질이 확실하게 끊어내질 못했다. 내가 확실하게 여지를 안줬다면 이렇게 상처받지도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일을 바꿀 수는 없겠으나, 다음에는 좀 더 지혜롭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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