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독서 에세이
피에르 바야르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독서 리뷰
아닌 게 아니라 이 '비독서'라는 개념은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 이 양자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어야 성립되지만 사실 우리가 텍스트를 만나는 다양한 형태들은 대부분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주의 깊게 읽은 책과 한 번도 손에 잡아본 적 없는 책 사이에는 여러 수준의 독서가 있으며 (중략) 반대로, 분명히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해서 그 책들이 우리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독서 인생에는 종종 찝찝함들이 달라붙는다. 이를테면 '아 그 책 읽어야 하는데⋯' 라던지 '읽긴 했는데 제대로 안 읽어서 기억이 안 나네'같은 죄책감들이다. 우리는 환상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높은 기준을 두고 책을 대하는 거 같다. 교양인이라면 이 정도 책은 읽어야 한다, 꾸준히 다독해야 한다, 책 내용을 잊지 말아야 하고, 작가의 의도대로 메시지를 이해해야 된다, 완독을 안 해도 되지만 책을 읽다 말아버리면 괜히 스스로가 민망해진다 등등. 사실 이건 내 얘기다. 책을 읽을수록 앞서 말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숙제를 한 아름 받아오는 감정을 느꼈었다.
그러던 중 만난 책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니, 이 얼마나 신박하고 혹하는 제목이었던지! 피에르의 책은 그간 내가 가졌던 독서에 대한 불분명함 깨끗하게 씻겨준 책이었다. 물리적으로 텍스트를 읽는 '독서'와 여러 형태의 '비독서'를 소개하며 읽기의 개념을 확장시킨 것에 1차로 놀랐고, 내가 가졌던 수많은 기준들이 편견이었던 것에 2차로 놀랐다. 그리고 기꺼이, 아니 당연하게 자유롭게 읽고 말할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글은 디아나 선정 2024 올해의 책으로 미리 뽑힌 영광의 도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대한 독서 기록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독서에 대해
기본적으로 책은 읽지 않은 책을 어떻게 흡수하고, 또 어떻게 말하느냐를 두 파트로 나눠 설명한다. 가장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독서 기준이 얼마나 현실성 없고 부질없는지 설명하는데, 이를테면 사람들은 다독에 자주 매몰되지만 애초에 사회에서 언급되는 책 모두를 읽고 살아갈 수 없으며, 훑어보기나 귀동냥을 한 경우에도 책들의 관계성을 살피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또 우리 각자가 책을 흡수한다는 개념은 텍스트 자체를 이해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 뽑아내 스스로 손질한 내용을 기억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러니 내용을 잊어버린다 한들 개인의 '날조된 조각'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없다고 넌지시 얘기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훑어만 보거나 읽고 까먹을 때마다 '안 읽으니만 못하다'는 감정으로 마음의 부채가 쌓이고 있었던 참이었다. (브런치 글을 쓸 때 더욱 그랬다) 근데 오히려 작가는 수많은 비독서의 상황과 중요성을 언급하며, 앞으로 겪을 수많은 담론 속에서 비독서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주의 깊게 읽은 책 외에도 책에 대해 말해야 할 불가피한 상황은 생기기 마련이다. 작가의 그 말을 믿고 싶어 나머지 글들을 읽어나갔던 것 같다.
교양인들은 교양이란 무엇보다 우선 '오리엔테이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읽은 책이건 읽지 않은 책이건 책들은 일종의 2차 언어를 형성하며, 우리는 이 언어에 의거하여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 우리를 나타내고 그들과 소통한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책들은 간추리거나 다시 손질한 발췌문에 의해 우리 개성의 부족한 요소들을 제공하고 우리의 결함을 메우면서 우리를 표현하고 보완하는 데 쓰이는 것이다.
담화의 자원으로 보는 독서
특히 인상 깊었던 내용은 우리가 담론 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의 상황을 살펴보니 사람들은 책의 내용 설명을 목적으로 책 얘기를 하기보다는, 일부분을 발췌하여 말하고 싶은 주제의 논리를 보강하기 위해 책을 매개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때때로 전혀 다른 주제의 담화에도 어느 책이 인용되기도 한다. 책의 진짜 주제가 아닌 일부만 인용해 전혀 다른 담화에 사용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작가는 '화면 책'과 '내면 도서관'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화면 책은 실재하는 책의 내용보다 개인이 처한 특정 상황과 무의식적인 목적에 따라 부단히 재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어릴 적 기억을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재구성하여 기억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화면 책이라는 특성으로 개인이 이해하는 책의 주제와 메시지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재구성된 책을 소재로 우리는 여러 담화에 참여하게 되는(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독자는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말들에 기대어 자신만의 이상적인 메시지로 책을 이해한다. 실제로 북토크 등에서도 작가가 쓴 책과 독자가 읽은 책의 내용이 충돌하는 경우도 잦은데, 화면책을 감안하면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더욱이 책을 매개로 한 담화에는 한 권의 책으로 국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 속에는 여러 책과 관념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데, 개인의 화면 책들이 하나씩 쌓여 하나의 인격에 자리 잡은 내면의 도서관이 담화의 주요 자원이 된다고 강조한다. 피에르는 이를 '내면 도서관'이라 불렀다. 오랜 세월에 걸쳐 내부에 구축한 은밀한 화면 책들이 쌓인 담화의 원천들이 결국 담화에 사용되며, 한 권의 책이 아닌 도서관으로 세워진 사고방식이나 문화, 관념 같은 개념이 실제로는 사용된다는 점이 꽤 흥미로웠다.
즉 대화 중 책에 대해 얘기하는 건 지식 배틀을 하는게 아니었다. 읽어봤자 개개인이 모두 다르게 책을 이해할 뿐이고, 정답은 없고, 원하는 내용을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기억하면 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서평을 쓰다 보니 그간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한 정답 찾기에 매몰된 경향이 있었고, 늘 책을 정독하고 정확하게 정리하기 바빴던 것 같다. 책을 통해 피에르가 말하는 화면 책과 내면의 도서관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사실 독서라는 것이 생각보다 물컹물컹하고 말랑말랑한 행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 한 권의 책을 얼마나 잘 읽느냐보다 어떤 성격의 도서관을 만들어야 되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화제로 삼는 책들이 "실재"하는 책들과는 별 상관이 없으며 대개는 단지 '화면 책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느 면에서는 우리가 책들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이 만들어낸 그 대체물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략) 나는 독자와 모든 새로운 글 사이에 개입하여 알게 모르게 독서를 가공하는 이 신화적이고 집단적인 비개인적 표상들 전체를 '내면의 책'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 가상의 책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필터처럼 기능하면서, 어떤 요소들을 간직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결정함으로써 새로운 텍스트들의 수용을 결정짓는다.
서로 다른 두 진영이 두 부류의 책들, 혹은 서로 다른 두 도서관에 입각하여 대화를 나누려 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관계된다. 단순히 두 권의 책이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차이로 인해 어쩌면 양립불가능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두 문화의 대립이 문제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내면 도서관'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우리는 책 얘기를 할 때 결코 어떤 한 권의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법이 없다. 언제나 구체적인 책을 통화 대화를 하게 되지만 언급되는 책은 어떤 하나의 문화 개념 전체를 참조케 하면서 잠시 그 문화의 상징 노릇을 할 뿐이다. 다른 사람과 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때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내부에 구축한 도서관, 우리의 은밀한 책들이 쌓여 있는 그 내면 도서관은 다른 사람들의 도서관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며 충돌한다.
책들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저 교양의 생소한 요소들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뭔가를 교환한다. 나르시스가 위협받는 매우 불안한 상황에서, 우리의 내적 일관성을 보증하는 데 쓰이는 우리 자신의 부분들을 교환하는 것이다. 수치심을 넘어 우리의 정체성 자체가 이 교환들에 의해 위협받게 되는데, 우리가 연출하는 이 잠재적 공간에서 모호성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는 글마다 한 권의 책들을 언급하는데, 이 책의 킥이자 골 때리는 포인트는 글에서 언급한 하나하나의 책들이 모두 뒤적거리다 포기한 책, 읽었지만 까먹은 책, 귀동냥으로 알게 된 책이었다는 점이다. 이름을 걸고 쓴 책에 본인이 제대로 읽지 않은 책을 사용하고, 또 제목과 주제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니.. 진짜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작가의 재치에 감탄하며.. 나도 마지막 50페이지를 다 읽지 않고 독후감을 쓴다.
솔직히 책 문장이 좀 어려운 편이라 각오를 하고 읽는 것이 좋다. 요령을 알려주는 실용서는 아니라서, 유익한 느낌이 들지는 않겠지만 비독서에 대한 인식과 책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한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읽고 나서는 정말 좋다고 느꼈다. 아직 한 해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유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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